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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경찰은 무엇을 들고 있나요[책꽂이]

■총과 도넛…최성규 지음, 동아시아 펴냄

현직 경찰서장이 들여다본 美 자치경찰제도

지역자치 위한 분권 시스템 속 강한 공권력

지역 커뮤니티에 녹아든 풀뿌리 치안 설명

과잉진압·인종차별 ‘사회구조 탓’ 분석 한계

지난해 6월 미국 수도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에 의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자 공원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다./워싱턴 UPI=연합뉴스




‘OO와 함께 커피를…’

상상만 해도 감미로운 문장 속, 나와 함께 커피 마실 이는 누가 있을까. 연인, 친구, 가족… 저마다 떠올린 대상 중 ‘경찰’이 포함된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범죄·수사·공권력 등 다소 경직된 이미지 속에 경찰과 마주 앉아 무언가를 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진땀 나는 상황이다. 그런데 실제로 ‘경찰과 함께 커피를(coffee with cop)’을 구호로 내세워 주민과 경찰이 함께 어울리는 곳이 있다. 그 주인공은 미국 시카고경찰청. 매달 23명의 구역 경찰서장들은 지역 커뮤니티센터를 찾아 주민과 커피를 마시면서 간담회를 한다. 주민이 얼마나 참석할까 싶지만, 오랫동안 분권 시스템에서 살아온 미국인들은 지역 치안에 대한 주인의식이 남다르고, 자연스레 이 커피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석한다.

인기 만화 ‘심슨 가족’에서도 이런 친숙한 경찰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이 만화에는 양손에 도넛과 커피를 들고 있는 스프링필드경찰서장 클랜시 위검이 나온다. 야간 근무 때 졸음을 쫓기 위해 도넛과 커피를 많이 찾는 미국 경찰의 모습을 반영한 캐릭터다. 일부 매장에선 고마움과 존경의 표현으로 경찰에게 특정 도넛이나 커피 메뉴를 공짜(또는 할인 가격)로 제공한다. 백인 경찰관이 “숨을 쉴 수 없어요(I can’t breathe).”라고 호소하는 흑인을 조지 플로이드를 과잉 진압해 죽음에 이르게 하고, 어린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무장하지 않은 흑인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인 사건을 떠올리면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하다. 현직 경찰 서장이 쓴 신간 ‘총과 도넛’은 이처럼 한 손에는 도넛 혹은 커피(친숙함과 존경), 또 다른 한 손에는 총(과잉 권력과 혐오)을 든 미국 경찰의 세계를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사실 이 책은 미국이 채택하고 있는 자치 경찰 제도에 대한 요약서다. 미국 경찰은 크게 연방(Federal)·주(州, State)·지방(자치)경찰로 나뉘는데, 소단위 지자체의 민생·치안을 담당하는 게 바로 자치 경찰이다. 한국 도시 개념에 빗대 설명하면 광역시단위의 지방자치 정부에 경찰권을 부여해 그 지역의 민생 치안을 스스로 유지하고 담당하게 하는 제도다. 이에 대비되는 개념이 국가 경찰제로 대통령이 임명한 경찰청장이 전국 경찰을 지휘하는 구조다. 국가 경찰제를 시행해 오던 우리나라도 관련 법 개정을 거쳐 올해부터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자치 경찰 제도를 시범 운영한다. 국가 경찰은 전국 단위 수사나 대테러 첨단 범죄 정보 같은 국가적 치안 업무를 맡아 처리한다.



이제껏 한국에는 경찰이 국가 경찰 하나만 있었지만, 미국에는 무려 1만 8,000여 개의 자치 경찰이 있다. 더 재밌는 것은 이 1만 8,000여 개 자치 경찰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점. 명칭부터 규모(10인 이하 소규모 경찰서부터 1만 명이 훌쩍 넘는 대규모 경찰서까지), 제복, 근무 방식 규정도 전부 다르다. ‘그래서 뭐가 제대로 돌아가겠느냐’는 의문이 생길 법도 하지만, 그게 가능한 게 ‘분권의 나라’ 미국이다. 미국의 수많은 자치 경찰은 효율적인 치안 활동을 위해 하나로 뭉친다. 각각의 경찰서에서 경찰관 두세 명을 차출해 SWAT 연합 팀을 이루고, 수많은 소도시가 연합해 광역 911 지령실을 두는 등 ‘컨소시엄 협조 체제’가 탄탄하게 굴러가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처럼 하나의 국가 경찰을 둬 조직적으로 움직이면 보다 효율적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핵심은 치안 자치다. (중략) 치안 자치를 통해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는 이들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힘이다.”

지난해 6월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에 의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뉴욕에서 열린 가운데 한 집회 참가자가 경찰 예산 삭감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뉴욕 AFP=연합뉴스


그렇다면 수시로 국제 뉴스를 장식하는 미국 경찰의 과잉 진압 문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가는 과잉 진압 사건에도 해당 경찰관이 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이 배경엔 경찰 노조가 있다. 미국은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로 역할이 확실하게 나뉘어 있어 누가 누구를 지휘·감독하지 않는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그런데 검사장이 투표로 뽑히다 보니 검찰은 수많은 경찰관이 가입해 있는 경찰 노조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결과적으로 표를 의식한 검사장은 문제가 있는 경찰관의 기소를 주저하게 된다. 여기에 상대적 면책 특권이나 불심검문처럼 치안 현장에서 경찰 쪽에 힘을 실어주는 법적 장치들이 있다 보니 미국 경찰은 강한 공권력을 가지게 됐다.

분석이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미국 경찰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총을 과도하게 사용하고, 수사 과정에서 인종 차별을 자행한다는 지적에 대해 책은 ‘총기 소유 문화 속에 경찰이 자기 방어를 위해 총을 쓸 수밖에 없다’, ‘반복적으로 흑인 범죄자를 접하다 보니 편견이 생긴다’, ‘근본적인 원인은 경찰이 아닌 사회의 고질적인 악습(차별)이다’ 등 그 이유를 사회 구조적 문제로만 돌리려는 모습을 보인다. 미란다의 원칙으로 현장에서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을 제어하고 소송·현장 상황 녹화·경찰 바디캠 등의 견제 장치가 마련돼 있다고 소개하면서 ‘치안이 단순히 총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고’는 하지만, 100% 동의하기는 어려운 지점이 있다. 1만 5,000원.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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