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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고발했더니 왕따가 됐다…학폭만큼 무서운 ‘직장폭력’

대기업 상사 언어폭력과 ‘갑질’ 시달리다 사표 제출 잇따라

‘직장 내 괴롭힘’ 성립요건 불명확…가해자 처벌규정 미흡

“쉬쉬하기보단 직장문화 개선 나서야”…경영진 결단 필수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이미지투데이




“아무리 소리쳐봤자 변하는 건 없었어요. 퇴사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죠.”

LG그룹에서 근무하던 20대 회사원 A씨는 얼마 전 도망치듯 회사를 그만뒀다. 직장상사의 언어폭력과 ‘갑질’에 시달리던 그는 업무배제와 따돌림까지 당하고 나서야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 회사는 ‘인간존중’을 표방했지만 그는 결코 존중받지 못했다.

최근 스포츠계에서 촉발된 학교폭력 고발행렬이 줄을 잇는 가운데 직장 내 언어폭력과 따돌림에 시달리는 샐러리맨들의 호소도 잇따르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법 적용기준이 모호한데다 가해자 처벌규정도 미흡해 피해자들은 실질적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도적 보완책과 함께 기업 스스로 직장 내 폭력을 감추려 급급하기보다는 기업문화 개선에 나서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17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카카오 직원으로 추정되는 한 작성자가 ‘유서’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문제 제기했지만 비밀보장은커녕 따돌림만 더욱 심해졌다고 주장했다. 해당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다음날인 18일에도 ‘카카오의 인사평가는 살인’이라는 폭로 글이 게시됐다. 작성자는 “조직장의 괴롭힘을 상위평가에 솔직하게 적자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자해만 수차례 시도했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카카오 측은 “논란이 된 인사시스템은 2016년부터 시행된 것”이라며 “직원들 의견을 수렴해 문제사항을 개선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처음 시행된 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직장 내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법 적용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먼저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업무상 적정범위’는 그 기준 자체가 모호할 수밖에 없고, 소리소문없이 이뤄지는 ‘은따’(은밀한 따돌림)는 신고조차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위계질서가 명확하고 생업까지 걸려있는 직장에서는 피해자가 문제를 입밖으로 꺼내기조차 어렵다”며 직장 내 폭력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규정이 미흡한 점도 문제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법 시행 직전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처벌규정 도입 등 개선사항을 권고했지만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뒤늦게 지난달 25일 가해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처벌 대상이 사용자와 그 친족으로 한정돼 여전히 반쪽짜리 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명확한 처벌조항이 없다 보니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실제 재판에 넘겨지는 경우는 전체 사건의 0.3%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상임위원은 “괴롭힘 유형을 보다 세분화해서 법에 명시해야 한다”며 “가해자 처벌규정을 신설하는 것은 물론 그 대상을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기업 스스로 사내문화 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박 위원은 “누가 문제를 일으켰는지에 치중하기보다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면서 “사내 업무문화를 바꾸려는 경영진의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민제 기자 ggang@sedaily.com, 허진 기자 h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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