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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내칼럼
[여명]선수는 없고 심판만 남은 금융시장

최형욱 금융부장

'공공성 회복'이란 좋은 취지에도

금융을 산업 아닌 정치로 접근 땐

금융산업 후퇴하고 선진화는 요원

'탐욕도 시장 발전의 한축' 인정을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자유 방임을 지지하면서도 금융 투기꾼들은 극도로 혐오했다. 도덕적 우월감에 빠진 제퍼슨파 정치인들은 금융인들을 만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결국 금융 시장은 사기와 협잡·탐욕이 지배하며 규율 없는 사기꾼들의 놀이터로 방치됐다. 또 주기적으로 호황과 거품 붕괴를 반복하며 실물 경제에도 부담을 줬다.

제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도 투기와 대형 은행들을 증오했다. 두 사람에게는 금융인과 투기꾼·도박꾼이 서로 구분되지 않았다. 중앙은행은 합법적인 사기꾼, 즉 금융인들의 위기를 구제해주는 기관으로만 보였다. 다만 잭슨은 제퍼슨과는 정반대로 금융 시장에 공격적으로 개입했다. ‘서민 대통령’을 자임하던 그는 제2 합중국은행에서 연방정부 자금을 빼내 지방 소규모 은행에 나눠줬다. 금융 시스템에 무지한 대가는 참혹했다. 중앙은행이 통화 공급 조절 기능을 잃자 여러 ‘나비 효과’를 거쳐 서부 땅 투기 바람, 소규모 은행 줄도산과 채무자 파산, 재정 악화 등을 촉발했고 미국 경제는 불황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이처럼 숱한 시행착오의 결과물이 현행 미 금융 시스템이다. 너무나 뻔한 소리지만 금융 시장 성장과 안정을 위해서는 탐욕스런 플레이어와 이를 규제할 심판 간의 미묘한 균형이나 긴장이 필요하다. 심판이 플레이어의 과도한 탐욕과 공포를 통제하지 못하면 금융 시장에는 위기가 찾아온다. 역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플레이어의 탐욕을 지나치게 억눌러도 금융 산업 쇠퇴는 물론 시스템 위기가 찾아온다. 1997년 외환위기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도 정부가 제 가격을 받으려는 시장의 욕망을 무시하고 환율 등 시장가격을 조작했기 때문이다.

요즘 문재인 정부의 금융 정책을 보노라면 심판만 있고 플레이어는 사라진 듯하다. 현 정부는 출범 초기 서민·취약차주 지원, 금융 소비자 보호 강화, 사회적 금융 활성화 등 포용적 금융을 핵심 정책 기조로 내숴웠다. 공공성 회복이라는 취지는 바람직하다. 문제는 ‘신뢰’ 못지않게 ‘탐욕’ 역시 금융 산업의 본질이라는 점을 간과한다는 점이다.

금융을 ‘산업’이 아닌 ‘정치’로 접근하면서 후유증도 가시화하고 있다. 정부가 실손보험료 인상 폭을 제한하면서 손실이 수조 원에 이르자 보험사들은 상품 판매 자체를 속속 중단했다. 카드사는 소상인에 대한 카드 수수료 인하를 압박하자 각종 소비자 혜택을 중단했다. 현 정부는 금융권이 소비자를 약탈한다고 보는지 일부 이익은 사회에 환원하라고 하는 중이다. 또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펀드, 뉴딜 펀드 등 관제 펀드 조성에 금융권을 동원하고 최근에는 서민 금융 상품을 취급하지도 않는 은행·보험사에도 서민 금융 출연금을 내라고 압박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대출 원금 상환의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를 실시하면서 금융권이 ‘폭탄 돌리기’를 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정부로서는 재정을 아낄 수 있겠지만 한계 기업의 구조조정이 늦어지면서 은행권 잠재 부실이 쌓이고 나아가 금융 건전성마저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25일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금융권을 통제 대상으로만 보는 온정적 간섭주의(paternalism)의 단적인 사례다. 법안에 모호한 구석이 널려 있어 금융권 혼란이 극심한데도 금융 당국의 금소법 감독규정은 불과 1주일 전에, 체크 리스트는 5일 후에나 나왔다. 하지만 금융권은 과거 파생상품 부실 판매,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고객 대출 금리 조작 등의 원죄가 있어 볼멘소리조차 못하고 있다.

잔뜩 움츠러든 금융권은 인공지능(AI) 로보어드바이저 등과 같은 비대면 혁신 서비스를 아예 중단했다. 금융 당국은 6개월간 처벌 없이 유예 기간을 준다지만 시범 케이스에 걸릴까 두려워서다. 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는 사석에서 “금융 규제는 필요하지만 시장과 서로 대화하며 예측 가능해야 한다”며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뒤늦게 쫓아다니면서 일일이 뒤통수를 때린 게 한두 번이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서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정부는 과거 사모펀드 시장을 활성화한답시고 관련 규제를 풀어주고 감독은 소홀히 하는 바람에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사태가 터진 데 일부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희생양을 찾아 펀드 판매에 관련된 은행장들까지 금융권에서 퇴출시키기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렇다면 숱한 금융 소비자 피해를 양산하며 원인 제공을 한 옵티머스·라임 사기 수사는 왜 아직도 꿩 구워 먹은 듯 감감무소식인가.

/최형욱 기자 choih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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