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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비핵화 조건으로 '군축' 요구 가능성…KAMD로 재도발 대비해야

[민병권의 군사이야기]

범위도 기준도 모호한 한반도 비핵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핵탄두 모형을 살펴보는 모습. 북한은 지난 2017년 9월 3일 6차 핵실험 이후 해당 사진을 관영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AP연합뉴스




한미일과 주요 7개국이 최근 양자 및 다자간 외교장관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공조에 힘을 모으면서 우리의 군사·안보지형에 어떤 여파가 미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미국의 조 바이든 정부는 일단 외교적 해법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려 하지만 비핵화의 범위와 주체·기준이 여전히 모호해 자칫 북한의 협상 전술에 끌려다닐 수 있다. 더구나 북미 간 대화의 초점이 비핵화보다는 군축 협상으로 기울게 되면 대한민국으로서는 미국의 확장 억제(핵우산) 제공 및 주한미군 주둔과 같은 핵심 안보 공약을 잃을 우려가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美, CVID 아닌 CVIA 제시…북핵 '폐기' 대신 '포기'에 방점

핵심 설비 파괴 등 불능화 조치 않으면 언제든 복구 여지 남아

비핵화 시늉만 하면서 韓 동시 검증·주한미군 축소 내걸 수도

일부 핵물질 숨기면 탐지못해…협상 타결돼도 대비태세 필수

◇군축으로 이어질 ‘상호주의 덫’=문제는 북한이 비핵화를 부실하게 진행하더라도 한미 양국은 그에 상응해 군비 통제를 넘어서 군축에 응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비핵화에 합의가 있을 때 한미 동맹 관련 사안에도 여파가 미치기도 했다. 1차 북핵 위기 후 지난 1992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하면서 미군은 한국에 배치했던 전술핵을 철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018년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고 밝혀 파장이 일기도 했다.

군 전문가들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상호주의 원칙, 동시성의 원칙 등을 내세워 자국뿐 아니라 한국에 대해서도 동시에 무기급 핵물질 등이 없는지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을 수용할 경우 북한은 자국 내 핵 시설 신고 이후 국내 군 시설 등에 대해서 핵물질 여부를 찾겠다며 동시 검증하거나 사찰하려 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우리 군과 주한미군의 군사 전력이 노출될 위험이 있다.

익명을 요청한 전직 군 고위 관계자는 “대북 협상의 가장 큰 딜레마는 북한이 비핵화에 대응해 국내 우리 군 시설 및 주한미군 기지에 대한 핵사찰을 함께하자고 요구하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 등) 확장 억제 공약을 철회하도록 요구하거나 주한미군의 축소나 철수, 한미연합훈련의 영구 폐지를 주장할 소지가 있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대북 비핵화 잣대 낮추나=조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 후 북한 비핵화 기준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기준은 모호하다. 원래 미국은 2000년대 초 조지 W 부시 집권 1기 정부 시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VID)’를 대북 비핵화의 원칙으로 세우고 고수해왔다. 그러나 지난 트럼프 대통령 시절 CVID 기준이 흔들리더니 바이든 정부 들어서도 CVID를 공개적으로 표방하지 않고 있다. 대신 바이든 정부는 올 4월 ‘군비통제·비확산·군축 이행보고서’를 통해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북한 비핵화(FFID)’라는 용어를 제시했다. 미국의 대외 공개 방침에서 ‘불가역적 북핵 폐기’라는 용어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미국이 참여하는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회의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해당 회의는 6일(현지 시간) 열렸는데 공동성명에서 ‘CVID’ 표현은 없었다. 대신 북한의 불법적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에 대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포기(CVIA)’라는 목표를 유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포기’와 ‘폐기’는 비슷하게 들리지만 기술적으로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 ‘폐기’는 북한 내 핵 시설을 되돌릴 수 없도록 완전히 불능화하고 해체·파괴하며 핵물질을 해외로 반출한다는 의미로 외교가에서 해석돼왔다. 2003~2008년 2차 북핵 위기 당시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이 수용한 ‘2·13합의’에서도 비핵화의 절차는 최종적으로 ‘불능화·폐기·해외이전’으로 구체화됐다. 반면 ‘핵 포기’라고 한다면 2015년의 미국·이란 간 핵 합의처럼 핵 시설 중 6,000여 개의 연료봉 등만 폐기하고 저농축우라늄 시설 등은 유지하는 방식으로 북한 비핵화 협상이 이뤄질 여지가 있다. 이렇게 되면 최근 이란이 합의를 깨고 다시 핵 시설을 가동하겠다고 위협해 위기감을 느끼는 이스라엘과 같은 처지에 우리나라가 동조화될 수 있다.

북한의 화성-12형 발사 장면. 최대 사거리 6,500km여서 핵탄두를 탑재해 괌 일대 등까지도 비행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불가역적 핵 불능화·폐기 방법은=‘불가역적 핵 불능화·폐기’라는 기준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영구적 핵 불능화 및 폐기냐, 단순한 핵 시설 가동 중단이냐를 가를 수 있는 핵심 검증 잣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가역적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빠르면 1년 이내, 혹은 1~2년 내에 복원할 수 있다.

원자력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의 핵 불능화는 우선 원자로의 주요 장치(제어설비·냉각탑 등)를 제거·파괴하거나 노심 등에 콘크리트, 혹은 가동 불능용 혼합물을 주입하는 방식 등으로 시작할 수 있다. 또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의 주요 장치(연료봉 절단기, 전원 장치, 주요 배관 등)와 핵연료 제조 공장의 주요 장치(연료봉 코어 및 피복관 제작기기 등)를 파괴하는 방법 등을 동원할 수 있다. 이 중 가장 신속하고 비용 효율적이면서 복원 불가능한 방법을 선별해 액션플랜으로 짜놓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38노스가 2019년 2월 발간한 ‘영변 핵 불능화 및 폐기 방법 가이드’에 따르면 원자로 용기, 냉각회로 등에 콘크리트를 부어 채워넣거나 방사능 차폐실(hot cell)에서 원격제어 로봇 팔을 제거하는 방식 등으로 비교적 빠르고 비용을 절감하면서 핵 시설을 불능화할 수 있다. 이는 걸프전 이후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IAEA)가 이라크 핵 시설에 적용했던 방법이다.

만약 이 같은 ‘불가역적 기준’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북한은 비핵화 시늉만 하는 데 그칠 수 있다. 핵 시설의 핵심 장치가 아니라 추후 복구 가능한 일부 보조 장치나 부차적인 구조물 등만을 제거하거나 일시 중지시키는 방식이다. 실제로 북한이 2018년 5월 24일 폭파 및 폐쇄했다고 주장한 풍계리 핵실험장에 대해 미국 국무부는 “복구 가능할 것으로 거의 확실시된다”고 ‘2021 군비통제·비확산·군축 이행보고서’를 통해 평가했다.

◇국방 태세에 주는 함의는=향후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해 핵 시설을 신고하고 사찰을 받더라도 일부 시설은 신고하지 않고 숨겨놓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특히 플루토늄 관련 시설보다 소규모로 분산된 우라늄 농축 시설은 신고 누락 시 검증이 쉽지 않다. 2003~2008년의 2차 북핵 위기 해법 모색 과정에서 당시 정부에 조언했던 국내의 한 핵 전문가는 “고농축우라늄(HEU) 등은 금속 비드(구슬·bead) 등의 형태로 분산해 숨길 수 있는데 이 경우 탐지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전했다. 따라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타결돼 일부 합의 내용이 진행되더라도 북한이 은닉된 무기급 핵물질·시설을 이용해 추후 다시 도발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핵미사일을 요격할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는 더욱 강화하고 유사 시 핵 시설에 대한 예방적 선제 공격을 할 수 있도록 군 대비 태세 확충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민병권 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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