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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사또에 마음이 가네’ 오페라 ‘춘향탈옥’

“내 운명은 내가” 탈옥 감행 당찬 춘향과

답답 몽룡·짠한 변사또 등 캐릭터 재해석

한국어 가사·사투리…거리감 좁힌 오페라

오페라 ‘춘향 탈옥’에서 주인공 춘향은 몽룡이를 찾아 한양에 가기 위해 과감하게 손에 전기톱을 들고 탈옥을 감행한다./사진=예술의전당




“아따 춘향아, 솔직히 조건은 변 사또가 낫지 않으냐.”

그러게나 말이다. 고시 단박에 패스한 머리·돈·외모 되는 변사또, 거기에 일편단심이기까지 한 이 남자를 두고 의지박약 만년 고시생 몽룡을 기다리며 옥살이도 감수하겠단다. 춘향이에 장모 월매, 그 몸종인 향단과 방자까지 죄다 목이 달아나게 생겼는데, 몽룡은 술 마시고 놀러 다니느라 공부는 뒷전이다. 마음 순둥이인 거 말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 사내를 보고 있노라면 비록 백성 괴롭히는 탐관오리일지언정 춘향에게만큼은 진심인 변사또를 응원하게 된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일편단심 여인의 답답한 사연 같지만,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 ‘몽룡이 나를 지키지 못하면 내가 나와 가족, 내가 선택 남자까지 지키리라’는 당찬 여인은 곱디고운 손에 전기톱을 든다. 왜? 탈옥해 고시촌에 있는 몽룡이를 찾아가려고. 가서 내 서방 공부를 직접 시키기 위해서.

오페라 ‘춘향 탈옥’에서 단박에 고시를 패스한 능력자로 등장하는 변사또/사진=예술의전당




창작 오페라 ‘춘향 탈옥’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춘향전’, 우리에게 익숙한 ‘오페라’의 틀을 과감하게 깨부순다. 1970·80년대 한국의 부동산 광풍을 소재로 한 ‘빨간 바지’와 빈곤과 부조리 문제를 블랙 코미디로 풀어낸 ‘텃밭 킬러’ 등 오페라를 통한 한국 사회의 일면을 재치있게 다뤄 온 윤미현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뻔한 것은 싫다’는 특유의 반항 기질(?)을 발휘하며 ‘다른 춘향’을 선보인다. 사실 춘향은 그동안 다양한 작품을 통해 지고지순한 정절의 표상에서 자기 사랑에 적극적인 당찬 여인으로 변주돼왔다. 그러나 몽룡이 과거에 급제해 마치 해결사처럼 모든 고난을 일거에 정리한다는 결말은 그대로였다. 춘향 탈옥에서도 몽룡의 등장이 위기를 반전시키지만, 애초 이 해피엔딩의 판을 짜고 몽룡을 움직이게 하는 건 춘향이다. 사람 좋기만 할 뿐 지질하기 그지없는 몽룡과 고시 준비 중 바람나 떠나간 첫사랑의 아픔을 간직한, 그 첫사랑의 눈을 닮은 춘향에게 ‘아무도 모르는 깊은 산 속으로 도망가 사랑하자’고 구애하는 변사또. 물론 선택은 춘향의 몫이다만 어려운 환경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다 보니 공감에도 소통에도 서툴어진 한 남자에 더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밖에도 양반네들보다 훨씬 똑똑하고 할 말 하는 몸종 향단과 방자도 매력적이다.

오페라 ‘춘향 탈옥’에서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몽룡과 춘향/사진=예술의전당


변화된 개별 캐릭터를 살릴 새로운 서사나 갈등이 부족한 건 아쉽지만, 90분이라는 다소 짧은 러닝타임을 고려하면 애초 이 작품이 의도한 ‘주요 인물의 다시 보기’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오페라 하면 따라붙는 ‘외국어 가사의 부담’도 내려놓으시길. 정통 성악을 전공한 출연자들은 한국어로 된 대사와 노래로 좀 더 친숙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아리아로 듣는 ‘사랑가’를 비롯해 역시나 전형적인 오페라와 다른 나실인 작곡가의 음악도 인상적이다. 16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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