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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공화당이 美 재건 거부하는 까닭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민간 경제 주체에 역할 주지 않는

공공 프로그램에 알레르기 반응

정부를 '해결책 아닌 문제'로 봐

기간시설 구축 지출안 적극 반대

폴 크루그먼




지난 1956년 6월 26일 미국 연방의회는 주와 주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망 건설안인 주간 ‘고속도로법안’을 승인했다. 그로부터 3일 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의회가 송부한 법안에 서명했고 전국 고속도로망 건설 1차 집행 예산으로 248억 달러가 배정됐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환산하면 지금의 1조 2,000억 달러에 달하는 예산이다. 주간 고속도로망 구축이 연방정부의 유일한 주요 투자 프로그램이었던 것도 아니다. 정부는 댐 건설과 세인트로렌스 수로 프로젝트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그 당시 정치인들은 미국의 미래를 위해 과감히 투자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다. 정치권 전반에 그 같은 투자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는 얘기다. 소요 예산은 가솔린세 인상과 사용자 통행료로 조달하기로 했다. 이 법안은 무난히 하원을 통과했고 상원에서도 반대표가 단 한 표밖에 나오지 않았다.

지금의 미국은 다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의 공화당과 지금의 공화당은 완전 딴판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기간 시설 구축과 관련한 상원 공화당과의 논의를 중단한다고 선언했을 때 일부 언론은 이를 바이든에 가해진 ‘일격’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바이든이 공화당에 손을 내민 것은 형식적인 수순 밟기였고 그의 논의 중단 선언은 공화당에 기대지 않고 적절한 시점에 과감히 행동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반가운 신호다.

2009~2010년 헬스 케어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에서 당시 공화당은 진정성 있는 자세로 협상에 임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공화당은 시간을 끌다가 결국 바이든이 동의한 절충안을 모조리 거부하는 작전을 구사할 것이다. 이런 것은 빨리 끝낼수록 좋다.

공화당은 어쩌다가 한사코 ‘건설을 거부하는 정당’으로 바뀌었을까. 이는 정파성과 이념, 부당이득 등이 결합한 결과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실업률이 고공 행진을 하는 상황에서 공화당은 지출 삭감을 요구했다. 이유는 예산 적자에 대한 진정성 넘치는 우려 때문으로 포장됐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공화당은 예산 적자 우려를 버렸다. 공화당에 냉소적이던 정치 평론가들의 예상이 그대로 들어맞은 셈이다.



공공투자 증액, 특히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대규모 공공투자는 유권자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게다가 대규모 정부 투자는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한다. 하지만 민주당이 백악관을 장악한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지지와 일자리 창출은 공화당이 기간 시설 구축 지출안을 기를 쓰고 차단하려는 이유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이후 공화당은 정부를 ‘해결책이 아닌 문제’로 바라봤다. 물론 ‘세금은 늘 인하해야지 절대 인상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도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인프라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기반 시설 지출안이 인기가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공화당의 반대를 부추겼다. 정부의 역할 확대를 합리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현재의 공화당은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경제 주체들에게 큰 역할을 주지 않는 공공 프로그램에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이것이 어떤 목적이건 상관없다. 의료보험의 여러 부분들과 달리 처방약 부문은 민간 보험 회사들을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하다. 이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도입한 조항이다.

트럼프 보좌관들이 모호하기 그지없는 기반 시설 계획을 공개했을 때 필자는 이 제안이 아이젠하워의 인프라 투자법과 유사하다는 인상을 심어주지 않으려 고심한 흔적을 찾아냈다. 트럼프의 인프라 투자 계획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프라를 짓겠다고 나선 민간 투자자들에게 세금 혜택을 제공하는 복잡하고도 작동이 불가능한 시스템을 제시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로 그들의 인프라 플랜을 실행에 옮겼다면 그것은 아마도 당시 행정부가 실제로 시행했던 ‘기회 특구(opportunity zones)’ 프로젝트와 유사한 투자 프로그램이 됐을 것이다. 기회 특구는 저소득 지역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을 돕는다는 취지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애초의 취지와 달리 부유한 투자자들이 세제 혜택을 이용해 호화 주택을 건립하는 것으로 끝났다.

지금의 공화당은 민간 업자들에게 부당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모든 공공 프로그램에 반대한다. 양대 정당이 상원 의석을 절반씩 나눠 가진 상황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기반 시설 투자 계획을 이루려면 필리버스터를 피해 민주당 의원 전원의 찬성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캐스팅보트로 공화당의 도움 없이 이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 시점에 빨리 도착할수록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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