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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언어정담] 팬데믹 시대, 인류에게 '돌봄'의 가치를 일깨우다

작가

우리는 서로 돌보지 않으면 생존 못해

돌봄 노동자 등한시 않는 헤아림과

제대로된 근무·생활 환경 제공 필요

공존·연대로 팬데믹 위기 극복해야

정여울 작가




전세계를 휩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나는 ‘돌봄노동’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됐다. 돌봄은 단지 아픈 환자, 노인, 장애인을 향한 간호와 보살핌에 그치지 않는다. 전염병은 물론 각종 사고나 재해를 완벽히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언제나 잠재적 돌봄의 필요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 모두는 언제나 ‘돌봄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돌봄의 주체’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언제든 필요할 때 완벽한 돌봄과 보살핌을 ‘서비스’의 형태로 공급 받기를 바라지만, 돌봄은 단지 돈과 시간을 투여하면 기계적으로 생산되는 ‘상품’이 아니다. 돌봄노동의 각종 문제점들이 폭발하기 시작한 시점은 돌봄이 ‘상업화’되고 ‘상품화’되는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문제는 인류가 단 한 번도 돌봄의 효과적 형태를 평등하고 조화롭게 경험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상업화된 돌봄 이전의 세계에서는 돌봄의 가치가 집안에 존재하는 여성들의 ‘그림자 노동’으로 은폐되고 있었다. 현대사회의 간호 인력이나 육아 인력이 전문화된 노동의 형태로 진화한 것에 반해, 전통 사회의 돌봄은 철저히 ‘임금을 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무보수 노동의 형태로 착취됐다. 인류의 역사를 ‘돌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돌봄은 ‘그림자 노동’에서 ‘상업화된 노동’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그 결과 사람들은 돌봄의 가치를 철저히 ‘돈’의 형태로 평가하게 됐다. 전통 사회에서는 어머니나 누이들이, 현대사회에서는 전문 교육을 받은 임금노동자들이 돌봄의 역할을 떠맡게 됐으며, 그들이 감내해온 상상을 초월하는 노동 강도는 제대로 헤아림과 돌봄을 받고 있지 못하는 상태다. 요컨대 팬데믹으로 인해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돌봄의 ‘주체’들은 정작 과도한 노동 강도와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서 더더욱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게 됐다.

수면 부족과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간호사들이야말로, 환자를 보살피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야말로 또 다른 돌봄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돌봄노동의 종사자들에게 제대로 된 노동 환경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생활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돌봄선언’이라는 책은 팬데믹을 통해 우리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우리는 어떤 형태든 돌봄에 의존하여 생존한다는 사실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돌봄의 본질이 ‘상호의존’임을 일깨운다. 우리는 서로를 돕지 않으면, 서로를 돌보지 않으면, 결코 생존할 수 없는 집단적 주체이며, 각개격파나 각자도생 같은 냉혹한 생존 논리가 아닌 따스한 공존과 촘촘한 연대를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돌봄이라는 가치를 ‘아웃소싱’ 해 버리며 등한시하는 공동체엔 희망이 없다. 시장과 가족에 의지하는 돌봄은 희망이 없다. 시장에 의존하는 돌봄은 모든 보살핌의 일거리를 돈으로 환산하고, 가족에 의지하는 돌봄은 가장 책임감이 강한 사람에게 노동이 집중돼 한 사람의 ‘하드 캐리’로 돌봄을 더욱 타자화하기 때문이다.

돌봄은 힘들 때 잠깐 스쳐가는 비상사태가 아니다. 돌봄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 자체를 위해 필수적으로 존재하는, 집단적 생존의 요건이다. 돌봄은 삶에서 가끔씩 필요한 희귀 자원이 아니라 산소나 물처럼 필수적인 우리 삶의 근본 요건이다. ‘외주’를 준다는 표현 속에는 돌봄을 비롯한 수많은 노동을 정규직이 아닌 아웃사이더의 자리에 놓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돌봄노동은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하며, 가혹한 감정노동의 위험으로부터 반드시 보호 받아야 한다.우리는 직업과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를 돌볼 수 있는 힘과 사랑을 지닌 존재다. 사람을 살리는 돌봄, 돌봄의 노동을 결코 등한시 하지 않는 헤아림, 보살핌의 고통을 보살핌의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수많은 아이디어와 연대가 필요하다. 지금이야말로 돌봄을 돌봐야 할 시간, ‘타인의 아픔을 보살피는 이’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헤아려야 할 시간인 것이다. 우리는 돌봄을 삶의 가장자리가 아니라 삶의 중심에 놓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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