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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한족 문화 혼합된 주택…강희제 친필엔 관광객 손길

[최수문의 중국문화유산이야기] <16> 청대 만주귀족 주택 ‘공왕부’

공왕부의 후원을 관람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뒤쪽으로 후원의 메인 건물인 안선당과 그 앞에 박쥐연못(복지)가 보인다. /최수문기자




중국 베이징 중심의 스차하이 서쪽에 공왕부(恭王府)라는 청나라 때 만주 귀족의 주택이 있다. ‘왕부’는 말 그대로 왕이 살던 작은 궁궐이라는 의미다. 청나라 만주족 제도에서는 황제가 되지 못한 형제들 가운데 주요 인물에게 왕의 칭호를 부여했다. 공왕부의 주인은 공친왕(恭親王)이라는 사람으로, 본명은 아이신기오로 혁흔이다. 그는 8대 도광제의 여섯 번째 아들이자 9대 함풍제의 동생이었다. 조카인 동치제가 10대 황제가 되는 데 공을 세워 이후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19세기 후반 서태후와 함께 정국을 주도한 사람이다.

공왕부 건물은 전통 시대 베이징 성내에 있었다고 하는 만주족 왕부 47곳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했다. 이를 처음 만들고 운영한 사람들이 역대로 당시 최고의 권력자였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 건륭제 때 최고 권력자였던 만주 귀족 화신이 이 집을 지었고, 왕족인 공친왕이 이어받았다. 당시 공왕부보다 더 큰 ‘집’은 자금성밖에 없었다고 한다.

현재 베이징에 남아 있는 전통 건축물을 이야기할 때 가끔씩 잊게 되는 것은 이것을 만들고 사용한 사람들이 만주족이라는 사실이다. 만주족이 중국을 1911년 신해혁명 전까지 지배했기 때문에 현재도 베이징의 도시 건축에는 만주족의 문화가 짙게 남아 있다. 이는 중국의 다른 지역인 시안이나 난징·항저우 등 한족의 전통 도시와 구별되는 점이다.

특히 공왕부는 만주족과 한족의 문화가 섞여 있는 대표적 건축물이다. 전체적으로는 한족의 전통적인 ‘사합원 주택’ 구조와 ‘쑤저우 정원’ 양식을 따르면서도 만주족의 종교와 주거 형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면적은 6만㎡로 앞쪽 3만 2,000㎡의 주거·업무 구역과 뒤쪽 2만 8,000㎡의 후원 구역으로 나뉜다. 베이징 도심에서 이렇게 넓은 정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만주족 귀족의 특권이기도 했다.

앞쪽 주거·업무 구역은 다시 동·중·서로 나뉘는데 중간 부분이 핵심 중의 핵심인 은안전과 가락당이다. 왕부이기 때문에 의전을 해야 하는 구역이 있는데 이것이 은안전이다. 궁궐 자금성의 태화전에 해당된다. ‘전’이라 이름 붙은 건물을 갖고 있다는 것이 왕부의 특권이다. 가락당은 은안전 바로 뒤에 위치하는데 ‘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만주족의 전통 종교인 샤먼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자금성의 곤녕궁에 해당한다.

전통 만주족 저택의 마당에 있는 나무기둥 ‘수어룬간’을 받치는 돌 구조물. 맞은 편에 보이는 건물이 가락당으로 샤먼이 제사드리는 곳인데 현재는 보통 중국식 주택으로 개조됐다. 유일하게 수어룬간의 기둥받침 만이 남아있다. /최수문기자


원래 가락당 내부 구조는 만주식으로 ‘ㄷ’ 자 모양의 온돌이 있었고 온돌 서쪽 부분 위에는 제단이 놓여 있었다. 만주족의 전통에 따라 공왕부도 때에 맞춰 샤먼(무당)이 종교 행사를 진행했고 만주제국이 신해혁명으로 붕괴될 때까지 이어졌다. 아쉽게도 지금은 이런 모습이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혁명으로 제정이 폐지된 후 왕부들은 대부분 다른 용도로 사용됐다. 가락당도 1930년대 공왕부에 보인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이 들어서면서 철저히 개조돼 일반 중국식 건물처럼 됐다. 2008년 공왕부가 박물관으로 개방된 이후에는 전시실로 이용 중이다.

만주족 주거 형태로서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가락당 앞마당 동남쪽에 있는 직사각형의 돌 구조물이다. 원래 만주족은 집의 주 건물 앞에 신성한 나무기둥을 세우고 ‘수어룬간’이라고 불렀는데 돌 구조물은 이것의 받침대다.



이외에 동쪽 부분과 서쪽 부분은 실제 사람들이 거주하거나 업무를 보던 곳이다. 특히 서쪽 부분에 있는 석진재라는 곳을 눈여겨볼 만하다. 이는 화신이 이 건물을 지을 때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구할 수도 없는 금사남목이라는 최고의 목재가 사용됐다. 현재 자금성의 영수궁에 비견되는 건물이다. 나중에 화신이 사형당할 때 20가지 죄목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자금성보다 더 사치스러웠다는 것이다.

뒤쪽은 후원 구역이다. 도시 한가운데 이런 정도의 후원을 가진다는 것은 당시 집주인의 권력 정도를 보여준다. 이는 자금성과 중난하이의 관계와 비교된다. 현재는 중국 공산당 수뇌부가 살고 있지만 전통 시대에 중난하이는 황제들의 정원이었다.

후원은 전체적으로 중국 양쯔강 하류인 ‘강남’ 쑤저우 양식을 따랐다. 다만 건물들에서 만주풍을 느낄 수 있다. 후원의 가장 중심 건물은 안선당으로 여기에는 정면에 추가된 건물 공간인 포하(抱廈)가 있다. 눈이 많이 오는 만주에서는 건물에 대개 포하가 있었고 이것이 현재 베이징의 여러 건물에 남아 있다.

‘천하제일복’으로 불리는 강희제의 ‘복’ 글씨다. /최수문기자


공왕부가 중국 전통문화 유산에서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복 복(福)’ 자와 관련이 있다. 공왕부에는 복이라고 적힌 100×80㎝의 비석 글씨가 있는데 4대 강희제의 친필이다. 매일같이 많은 관광객이 몰려 이 복 자를 만지고 간다. 학자들은 이를 ‘천하제일복(天下第一福)’이라고 부른다.

덕분에 공왕부의 기념품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이 복과 관련된 기념품이다. 중국인들이 즐겨 벽에 거는 ‘거꾸로 떨어지는 복’ 자도 공왕부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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