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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담배셔틀'이 울리는 경종

신경립 문화부장

당연한 일상이 된 폭력과 모욕

사회의 도덕적 불감증 악화시켜

노인에 대한 도 넘은 학대·비하

부메랑 될 수 있다는 것 되새겨야





“저한테 왜 그러셨습니까?”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후임들에게 가혹 행위를 일삼던 황 병장은 복수심에 자신을 납치한 후임 조 일병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군대 내 폭력과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담은 화제의 드라마 ‘D.P.’ 속 한 장면이다.

누군가를 정신적·육체적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는 잔인한 폭력의 이유는 때로 이토록 단순하고, 허탈하다. 폭력과 모욕이 일상적으로 되풀이되는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들의 도덕적 감각은 마비되고, 극악한 괴롭힘은 가해자가 죄의식 없이 저지를 수 있는 장난이자 오락거리가 된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는 황 병장의 고백은 그래서 보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군대뿐이겠는가.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오가는 길에서조차 죄의식 없이 숱한 폭력이 벌어지고 그 수위는 점점 높아진다. 무례한 한두 마디의 말이 어느새 욕설로, 물리적 공격으로 번져가면서 부지불식간에 폭력은 당연한 일상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얼마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공개된 동영상은 제법 무뎌진 우리 사회의 도덕적 잣대로 봐도 충격적이었다. 10대 남학생들이 길거리에서 60대 할머니에게 ‘담배셔틀’을 시키고, 할머니가 이를 거부하자 위안부 소녀상에 놓여 있던 꽃으로 할머니의 머리를 치며 조롱과 욕설을 내뱉는 모습이었다. 이 장면을 촬영한 여학생은 화면 밖에서 시종 킬킬거린다. 경찰에 입건된 학생들이 밝힌 폭행 동기는 ‘장난’이었다고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들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청원자가 10만 명 이상 몰렸다. 그런데 학생들에 대한 징계나 처벌과는 별도로 우리 모두가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 이 참담한 상황을 단지 몇몇 개념 없는 학생의 잘못으로 돌려도 되는가 하는 것이다.

“폭력을 매일 보면 그것은 더 이상 경악이나 혐오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폭력이, 말하자면 우리에게서 자라난다.” 유럽의 지성으로 불린 두 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 레오니다스 돈스키스는 저서 ‘도덕적 불감증’에서 우리 사회에 악(惡)이 번져가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남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남의 고통에 무관심해질 때 일상은 악으로 가득한 혼돈의 세계가 된다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이해의 결여에서 악이 나온다면 노인은 몰이해와 그로 인한 차별의 대상이 되기 쉽다. 나이 들어보지 않은 젊은 세대가 나이 든 사람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오죽하면 미국의 계관시인 도널드 홀은 80대에 남긴 글에서 노인이 ‘세상에서 동떨어진 존재’이자 ‘별개의 생명체’라고 표현했다. 그러다 보니 노인은 종종 사회에서 혐오와 무시·소외의 대상이 된다. 국내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특히 심한 것 같다. 한 조사에서는 실생활에서 혐오 표현의 가장 흔한 대상이 노인이라는 결과도 나왔다. 정치적 의도가 의심되는 노인 비하 발언는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부추긴다. 얼마 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을 대리하는 50대 변호사는 현 정부를 비판한 101세 원로 철학자를 겨냥해 “이래서 오래 사는 것이 위험하다는 옛말이 생겨난 것”이라는 막말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런 말 한마디, 태도 하나가 사회의 도덕적 감수성을 더욱 약화시키고,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차별을 가하는 이른바 ‘연령차별주의(Ageism)’를 조장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노인들을 가장 이해하기 힘든 연령대의 청소년들에게 어떤 태도를 기대할 수 있을까. 동영상 속 10대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불감증이 노인 경시 풍조와 맞물려 낳은 끔찍한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그들은 그냥, 그래도 되는 줄 알았을 수도 있다.

이 학생들이 노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에 경종을 울렸기를 바란다. ‘D.P.’에서 황 병장의 가혹 행위가 부메랑이 되어 그에게 돌아갔 듯 젊은 세대가 노인을 대하는 태도는 미래의 노인들, 즉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고스란히 또는 더 혹독하게 돌아올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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