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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 CIA의 美대통령 평가

■ 데이비드 이그네이셔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정보 보고 담당자들이 쓴 연재물엔

트럼프 '대하기 힘든 존재'로 묘사

브리핑 기피하고 전문가 능력 의심

부시도 9·11 테러 경고 받고 외면

귀 기울인 오바마·바이든과 대조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정보 브리핑 담당자들이 공개적으로 고위 정치인들을 평가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CIA는 이례적으로 ‘대통령 파악하기’라는 제목의 짓궂은 폭로성 연재물을 펴냈고 이번에 최신 에피소드를 추가했다. 여기에는 비밀의 장막에 싸인 최고위 정치인들의 행동거지에 관한 브리핑 담당자들의 재미있는 뒷담화가 담겨 있다.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유난히 말이 많고 아는 척하기 좋아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정보 브리핑 담당자들은 그를 “대하기 힘든 독특한 존재”로 묘사한다. 정보 전문가들의 능력을 미심쩍어하는 트럼프는 정기적인 브리핑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전임자들보다 훨씬 적은 주당 두세 차례의 브리핑을 받는 데 그쳤다.

트럼프는 대통령에게 제공되는 ‘일일 정보 보고서’를 통독하지 않았다. 가끔 보고서를 ‘만지작거리며’ 읽는 시늉을 할 뿐이었다. 그의 브리핑 담당자인 CIA 정보분석관 테드 지스타로에게 자기 생각을 털어놓거나 질문을 하지 않았다. 국가정보국 수장이었던 제임스 클래퍼는 트럼프를 “팩트로부터 자유롭고 증거를 믿지 않는 대통령”으로 평가했다.

CIA 정보 담당관이자 ‘대통령 파악하기’ 작성자인 존 헬저슨은 지난 2002년부터 2009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CIA 감사국장을 지냈다.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에 대한 CIA 정보 브리핑의 시초는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브리핑 담당자들을 상대로 CIA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서베이 내용은 CIA 소속 정보연구센터에 의해 10월 내부 문건으로 정리된 데 이어 비밀 해제를 통해 일반에 공개됐다.

트럼프와 CIA의 관계는 매끄럽게 시작됐다. 2016년 8월 공화당 대통령 후보 자격으로 첫 번째 정보 브리핑을 받은 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11월 대선 승리 직후 그는 정보 보고를 받을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였다. 헬저슨은 “트럼프 자신도 선거 승리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그는 10주간 이어진 정권 인수 과정에서 단 14차례의 정보 보고를 받는 데 그쳤고 취임식 이후에도 브리핑을 기피했다.

CIA와 대통령 사이의 균열은 러시아가 대선에 개입했다는 정보 브리핑을 받은 2017년 1월 6일부터 시작됐다. 취임식 이전부터 둘의 관계가 뻐그러진 셈이다. 헬저슨의 설명에 따르면 CIA를 비롯한 미국의 정보 기구 수장들은 미국 대선 개입 공작을 승인하고 관리하는 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의 고위 관리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논의했다. 이들이 제시한 증거는 “트럼프 진영 내부에서 조사 결과를 반박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만큼 견고했고 트럼프도 정보 보고를 경청했다”고 지스타로는 회고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당시 연방수사국(FBI) 국장이었던 제임스 코미는 전직 영국 정보원 크리스토퍼 스틸이 힐러리 클린턴 선거팀으로부터 돈을 받고 작성했다는 문서 파일의 존재를 트럼프에게 귀띔해줬다. 지금 문건의 내용은 거의 전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고 당시에도 FBI와 주요 언론은 문서에 담긴 중요한 세부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코미는 신뢰할 수 없는 소문(gossip)을 트럼프에게 풀어놓았다.

그 이후 트럼프의 태도가 돌변했다. 지스타로가 정보 브리핑을 하기 위해 백악관 집무실로 들어가자 그는 “CIA가 나를 망가뜨리려 작심했다”며 10분 동안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 그에게 험악한 말 폭탄 세례를 퍼부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트럼프는 곧바로 “우리가 지금 나치 독일에 살고 있느냐”는 트윗을 날렸다.



이에 맞서 존 브레넌 당시 CIA 국장은 정보국 청사를 방문한 트럼프가 불쾌감을 자아내는 행동거지를 취했다며 ‘쓸데없는’ 뒷담화를 흘렸고 이란에 대한 대통령의 견해를 “어리석음의 절정”이라며 빈정댔다. 이와 관련해 헬저슨은 브레넌의 지지자들조차 그의 도발적 반응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밝혔다.

뒤이어 나온 트럼프와 정보 커뮤니티 사이의 충돌과 파열음은 그의 정상 궤도 이탈에 손을 보탰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문건 파일의 내용으로 볼 때 그 당시 코미가 조금 더 진중하게 행동했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겠느냐는 궁금증이 돋는다.

다른 정치인들에 대한 헬저슨의 기술은 신선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예컨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비밀공작의 피비린내 나는 폭력성을 알고 싶어했다. 2000년 9월 2일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첫 정보 브리핑을 받는 자리에서 부시는 중동 문제 전문가로부터 “차기 대통령 재임 중 미국 본토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테러 공격”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9·11 사태가 발생하기 1년여 전에 일찌감치 사전 경고를 받은 셈이지만 부시는 ‘피 튀기는 액션이 결여된 정보’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정권 인수기에 매일 정보 브리핑을 받기를 원했고 추수감사절에도 거르지 않고 보고를 받았다. 클래퍼는 그에게 특별한 전문가 브리핑을 제공하려 했지만 “절반은 하품 유발 정보”였다고 헬저슨은 한 배석자의 말을 인용해 밝혔다.

부통령과 부통령 후보들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등장한다. 딕 체니 부통령은 대통령 일일 정보 브리핑에 등장하는 내용에 관한 맞춤형 배경 설명을 추가로 요구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정권 인수기에도 평일에는 빠짐없이 정보 브리핑을 받았고 아들의 결혼식 날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CIA 브리핑 담당자들과 유달리 좋은 관계를 유지한 펜스는 이임을 앞두고 이들 전원을 관저로 불러 특별한 환송 파티를 열어줬다.

브리핑 담당자들의 ‘고객 평가’는 엇갈리는 측면이 있다. 2004년 민주당 부통령 후보 지명자였던 존 에드워즈는 브리핑 전에 “피자를 먹으러 갈 수 있도록 빨리 끝내자”고 스태프진에 한 말이 담당관의 귀에 들어가는 바람에 구설수에 올랐다. 2008년 공화당 부통령 후보 지명자였던 세라 페일린은 뜻밖에도 주의 깊게 브리핑을 경청했고 그 중요성을 이해했다고 인정받았다. 2012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은 밋 롬니는 “품위 있고 진중하며 당파성에 연연하지 않는 원로 정치인다운 면모를 과시했다”고 헬저슨은 높게 평가했다.

그렇다면 조 바이든 대통령은 어떨까. 2008년 부통령에 오른 그는 “브리핑 담당자들이 감탄할 정도로 중요 이슈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대답하기 어려운 많은 질문을 던졌으며 수시로 추가 관련 정보를 요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헬저슨은 브리핑 담당자들의 반응으로 보아 ‘졸린 조’라는 일부의 비아냥은 터무니없이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CIA 브리핑 담당자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고객’을 가리지 않았다. 1968년 CIA는 무소속 대통령 후보이자 인종차별주의자인 조지 월리스에게도 정보 브리핑을 해줬다. CIA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다른 모든 대통령 후보와 마찬가지로 잠재적 고객이었다.

대통령과 CIA는 어떤 관계인가. 물론 CIA는 정치적 편견을 배격한다. 그러나 ‘대통령 파악하기’를 통해 드러난 분명한 사실은 브리핑 담당자들 역시 그들을 진지하게 대하는 정치인들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 그들도 다른 무엇보다 자신을 얕잡아보는 상대를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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