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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담] 월북 '읽씹'에 北미사일, '종전선언' 말이 없어졌다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새해 벽두부터 탈북민 월북...軍 경계 구멍

北, 하필 文 남북철도 현장 간 날 미사일 쏴

'통지문 무응답' 김정은은 대외메시지 생략

美 "규탄, 韓 "우려"...文, 나흘만에 軍 질책

미국 前대사 종전선언 비판...靑 언급 급감

북한 "中올림픽 불참"...대선 영향 적을듯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31일 열린 제8기 제4차 전원회의를 주재하며 인상을 찌푸린 채 참석자들을 질타하는 듯한 모습.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 같은 계획이 결국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초부터 탈북민의 월북 사건이 벌어지더니 나흘 뒤 북한이 극초음속미사일까지 발사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례적으로 연초 대남·대미 메시지 발산도 생략하고 다음 달 베이징 동계올림픽 불참을 공표했다. 월북자에 대한 우리 정부의 물음에도 답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로 남북 간 재접촉이 원천 차단된 상황에서 전격적인 관계 복원도 사실상 물건너간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청와대도 어느 순간부터 종전선언에 대한 언급을 줄이는 분위기다. 두 달도 채 남기지 않은 대선에 남북 문제가 큰 변수가 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합동참모본부가 공개한 지난 1일 오후 12시51분 강원도 동부전선 민통선 주변 CCTV에 포착된 탈북자. /연합뉴스


새해 벽두부터 탈북민 월북…CCTV 5번 찍히고도 대응 못해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탈북민 출신 우리 국민 1명이 강원도 동부전선 최전방 철책을 넘어 월북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군 당국은 발칵 뒤집혔다. 탈북민 A(29)씨는 2020년 11월 귀순 때와 같은 방법으로 불과 4분도 걸리지 않고 22사단 GOP(일반전초) 철책을 쉽게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기계체조 선수 출신으로 키 150여㎝, 체중 50여㎏의 왜소한 체형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속에서도 무사히 귀순·월북이 이뤄졌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그가 북한에서 훈련받은 첩자가 아니냐는 추정도 나왔다.

특히 우리 군은 A씨의 모습이 군 감시카메라(CCTV)에 다선 차례나 포착이 됐는데도 이를 모두 놓친 것으로 드러났다. 군이 대응에 나선 것은 월북 정황이 포착된지 3시간 뒤였다. 전동진 합참 작전본부장(육군 중장)은 지난 5일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면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보완대책을 마련해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험준한 산악 지형과 긴 해안을 함께 경계하는 부대인 22사단에서는 이전에도 탈북·월북 관련 사고가 잇따랐다. 이 부대의 경계 범위만 육상 30km, 해상 100km가량에 달한다. 지난해 2월에는 북한 남성 1명이 고성 통일전망대 인근 해안을 통해 ‘오리발’ 등을 착용하고 뚫린 배수로로 월남한 사건이 발생했다. 2020년 11월에는 북한 남성이 최전방 철책을 넘은 지 14시간30분 만에 기동수색팀에 발견돼 초동 조치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2012년 10월에는 북한군 병사가 군 초소 문을 두드려 귀순 의사를 표시한 일명 ‘노크 귀순’도 발생했다.

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장해서 22사단에 가면 이산가족도 상봉할 수 있다는 지경까지 간 듯하다”고 비판했다. 원인철 합동참모본부 의장은 “군사대비태세와 경계작전을 책임지는 합참의장으로서 이런 일로 국민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정말 송구스럽다”며 “재발 방지를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청와대에서 2022년 임인년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北, 탄도미사일 도발까지…美는 “규탄”, 韓은 “우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은 5일 탄도미사일까지 시험 발사하며 한반도를 긴장 국면으로 몰아넣었다. 우리 군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전 8시10분경 내륙에서 동해상으로 발사체 1발을 발사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다음 날인 6일 “국방과학원은 1월5일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하였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미사일은 발사 후 분리되어 극초음속 활공비행전투부의 비행구간에서 초기발사방위각으로부터 목표방위각에로 120㎞를 측면기동하여 700㎞에 설정된 표적을 오차 없이 명중하였다"고 설명했다. 이날 시험발사에는 중앙위원회 군수공업부와 국방과학 부문의 지도 간부들이 참관했고 김정은은 불참했다. 다만 우리 정보 당국은 북측의 이 같은 발표가 한미 연합자산이 탐지한 결과와는 차이가 있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문홍식 국방부 부대변인은 이날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발사행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북한 도발에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도 연이틀 열렸다. 5일 NSC 상임위는 긴급회의를 화상으로 열고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그러면서도 북한과의 대화 재개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감’ ‘규탄’ ‘도발’ 등의 표현은 자제했다. NSC 상임위는 6일에도 열렸지만 이날은 아예 북한 탄도미사일 언급하지 않았다.

반면 이양수 국민의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은 6일 성명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심각한 전략적 도발”이라며 “도발을 도발이라고 부르지도 못하며 대화 재개 타령만 했다”고 비판했다. 미 국무부도 5일(현지시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 통화하고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이자 이웃 국가와 국제사회에 위협을 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강원 고성군 제진역에서 열린 동해선 강릉~제진 철도건설 착공식이 끝난 뒤 참석자들과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文 ‘남북철도’ 현장 방문 무색…나흘 뒤 軍 질책

월북 사건과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는 새해부터 남북관계 개선에 고삐를 죄려던 문재인 대통령 구상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문 대통령은 3일 청와대에서 발표한 신년사에서 “출범 당시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상황 속에서 대화의 물꼬를 트고 평화의 길을 만들어나갔다”며 “아직 미완의 평화이고 때로는 긴장이 조성되기도 하지만 한반도 상황은 어느 때보다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이어 “평화는 제도화되지 않으면 흔들리기 쉽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우리가 주도해 나간 남북·북미대화에 의해 지금의 평화가 어렵게 만들어지고 지탱되어 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정부는 대화와 함께 역대 어느 정부보다 국방력을 튼튼히 했다”고 강조했다.



월북 사건 이틀 뒤였음에도 ‘튼튼한 국방’ 성과를 부각한 것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월북자 관련 경계 실패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대통령이 이에 대해 질책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질책은 없었다”고 답했다.

5일 새해 첫 외부일정으로 남북철도 건설 현장을 찾아 희망을 부각하려던 계획은 같은 날 발생한 북한 도발로 퇴색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우리나라 최북단역인 강원 제진역을 찾아 “북한은 미상의 단거리 발사체를 시험 발사했다. 이로 인해 긴장이 조성되고 남북 관계의 정체가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이러한 상황을 근원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대화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북한도 대화를 위해 더욱 진지하게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2018년 판문점 선언으로 남과 북이 철도와 도로 교통망을 연결하기로 약속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부산을 기점으로 강원도와 북한의 나선을 거쳐 유럽 대륙까지 열차가 다닐 수 있는 길도 열린다”며 “유라시아 대륙을 향해 우리 청년들이 웅대했던 고구려의 기상과 함께 더 큰 꿈을 키워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군 부대에 대한 문 대통령 질책은 이 행사 뒤에야 나왔다. 사건 발생 나흘 뒤였다. 문 대통령은 “22사단 지역에서 발생한 경계작전 실패는 있어서는 안될 중대한 문제”라며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점에 대해 군은 특별한 경각심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참모들에게 “현장 조사에서 드러난 경계 태세, 조치, 경계 시스템 운영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군 전반의 경계 태세에 대해 특별점검을 실시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6일 "국방과학원은 1월 5일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하였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은 신년 대외 메시지도 안 내고 통지문에도 답 안 해

북한은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해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모양새다. 특히 우리 정부가 북한에 월북자 신변보호을 요청하는 통지문을 보낸 데 대해서도 이를 받은 사실만 알리고 답변은 안 한 것으로 파악됐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지난 3일 “2일 오전과 오후 두 번 통지문을 보냈다”면서도 “북측의 ‘수신 잘 했다’는 반응은 있었지만 내용에 대한 답변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탈북민 월북이 있었던 지난 2020년 7월의 경우 북한이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이 사실을 먼저 알린 것과는 대조되는 대목이었다. 당시 통신은 “개성시에서 악성비루스(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월남 도주자가 3년 만에 불법적으로 분계선을 넘어 귀향하는 비상사건이 발생했다”고 알렸고 우리 당국은 그때서야 월북 사실을 확인·발표하기 시작했다.

김정은 역시 새해 국정 방향을 결정하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새해 대남·대미 관계 사업 방향을 논의하고도 이례적으로 이를 공표하지 않았다. 국제 재제, 코로나19로 악화된 자국 내 여론 관리에 집중하면서 대외 상황은 더 지켜보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김정은은 1일 노동당 간부들, 김여정 당 부부장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지난해의 경우 김정은은 1월5∼7일 진행된 당 대회 사업 총화 보고 결과를 9일 통신을 통해 알리면서 대외 메시지를 냈다. 당시 김정은은 비핵화는 언급하지 않고 ‘핵’을 36차례나 거론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은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한 5일 중국 측에 편지를 보내 다음 달 개막하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공식화했다. 조선중앙통신은 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올림픽위원회와 체육성은 중화인민공화국 올림픽위원회와 베이징 2022년 겨울철올림픽경기대회 및 겨울철장애자올림픽경기대회조직위원회,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체육총국에 편지를 보내었다”며 “편지는 적대 세력들의 책동과 세계적인 대류행 전염병 상황으로 하여 경기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지만 우리는 성대하고 훌륭한 올림픽 축제를 마련하려는 중국 동지들의 모든 사업을 전적으로 지지, 응원할 것이라고 (했다)”고 보도했다. 적대 세력들의 책동이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020 도쿄올림픽 불참을 이유로 올해 말까지 북한 올림픽위원회(NOC)의 자격을 정지하는 징계를 내린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국경 봉쇄도 불참의 이유로 들었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 /연합뉴스


북한, 中올림픽 불참까지…종전선언 언급 줄인 靑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대내외 여건이 악화되면서 청와대도 종전선언 언급을 급격히 줄이고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도 종전선언을 거론하지 않았다. 대신 ‘평화의 제도화’라는 우회적 표현을 새로 썼다. 새해 NSC 상임위도 종전선언이 아니라 같은 용어를 썼다. 문 대통령은 5일 남북철도 현장에서도 종전선언을 말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중순 호주 순방 때만 해도 국제사회에 종전선언를 반복해서 외쳤지만 불과 몇 주만에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북한이 코로나19로 한국, 미국뿐 아니라 우방국과의 교류도 줄인 만큼 단기간에 획기적인 변화를 꾀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문 대통령이 베이징 올림픽에 불참하는 대신 이달 말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화상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베이징 올림픽을 남북 관계 개선의 한 계기로 삼기를 희망했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기대가 어려워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이미 토로했다. 그는 ‘중국 측에서 북한의 종전선언 관련 반응을 전달받은 것이 있느냐’는 물음에도 “없다”고 답하면서 “한미 간에는 사실상 합의가 된 상태”라고 밝혔다. 박수현 국민소통수석도 지난 3일 조선일보 유튜브 ‘강인선·배성규의 정치펀치’에 에 출연해 “문재인 정부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남북정상회담을 목표로 한다든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만난다든가 하는 로드맵을 가져본 일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런 상황에서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는 종전선언 구상을 공개 비판해 이목을 끌었다. 해리스 전 대사는 4일(현지시간) 워싱턴타임스 재단이 주최한 화상 세미나에서 “정전선언과 한국을 지키기 위한 협상 문구는 여전히 훌륭하다”며 “종전선언은 평화 협상이 아니다. 종전선언으로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고 불평했다. 그는 “북한의 미사일과 핵·생화학·재래식 무기도 여전히 훌륭하다”며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력을 약화하는 것을 대가로 대화에 나서서는 절대 안 된다”고 우려했다. 주한미국대사 자리는 그가 이임한 지난해 1월부터 1년째 공석이다. 바이든 정부가 주한대사를 한 번도 임명하지 않은 탓이다. 다만 프랑스 상원이 5일(현지시간)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지지하는 취지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코로나19, 미·중·북 관계 등을 고려할 때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구상이 현실적으로 대선 전에 성사되기는 굉장히 힘들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는 멈춰 있는데 정권의 시간만 하염없이 흐르는 상황이다. 북한의 ‘깜짝 이벤트’가 나오지 않는 이상, 대선 정국에서도 여권이 남북관계에 따른 호재를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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