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진자 폭증으로 쓰다 남은 의약 폐기물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환경 당국의 의약폐기물 관리가 도마에 올랐다. 환경 당국의 사실상 방치 속에 서울시가 폐의약품 처리를 놓고 약사회와 갈등을 겪는 등 지방자치단체마다 중구난방 처리 방식으로 국민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폐의약품 처리 부실로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18일 서울경제 취재 결과 전국 229개 시군구 가운데 폐의약품 처리에 관한 조례를 마련한 곳은 절반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폐기물관리법과 환경부 지침은 폐의약품을 인체와 환경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생활계 유해폐기물’로 명시하고 각 지자체에서 조례로 약국과 보건소 등 배출원과 처리 방식을 구체적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 조례를 마련한 지자체는 겨우 94곳 내외로 2년 전 국민권익위원회 지적 당시 83곳보다 10곳 남짓 늘어나는 데 그쳤다.
폐의약품 처리를 두고 약사회와 지자체 간 혼선도 빚어졌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부터 개별 약국에서 거점 약국으로 수거되던 폐의약품을 약사회에서 수거하지 않고 지자체에서 직접 수거하도록 방침을 정했다. 당시 대한약사회(서울지부) 측의 불만이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약사회 측은 “약국에 버려진 폐의약품을 처리하는 방식이 자치구마다 달라 약국에 버려진 약들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주기적으로 폐의약품을 수거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수거가 늦어 폐의약품이 지나치게 오래 방치돼 약사들의 불만이 크다”고 했다.
자치구마다 다른 폐의약품 처리 방식으로 약사회와의 갈등이 잇따르자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보건소와 구청에도 폐의약품 수거함 확충에 나섰다. 이달부터는 자치구마다 다른 폐의약품 처리 방식을 통합하고 공동주택 등에 수거함 증설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지자체 조례가 제대로 마련된다고 해도 폐의약품 처리가 적절히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정확히 얼마나 많은 양의 폐의약품이 토양에 매립되고 있는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폐의약품은 지하수와 토양에 스며들게 될 경우 생태계 교란과 항생물질 노출로 인한 슈퍼 박테리아에 대한 우려가 있어 소각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폐의약품은 폐건전지 등과 함께 ‘생활계 유해폐기물’로 한데 묶여 처리될 뿐 따로 집계·처리할 수 있는 행정 코드가 따로 없다. 2020년 권익위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4%가 폐의약품을 “(그냥) 종량제 봉투에 버린다”고 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 당국이 폐의약품 처리를 사실상 지자체에 떠넘기며 방치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조례로 구체적인 폐의약품 처리 방식을 정하도록 명시해도 지자체에 사무를 위임할 경우 업무 부담만 주지 말고 제대로 된 평가 기준과 함께 인센티브 등 예산 문제 해결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국의 안일한 인식으로 시민들의 건강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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