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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금융, 통제가 아닌 시스템이 필요하다

박성호 금융부 차장


조선 시대 임금들의 골치를 앓게 한 문제들 중 하나는 고리대였다.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는 세종·영조도 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다 보면 거의 모든 왕들이 백성을 대상으로 한 공채와 사채의 이자에 대해 신하들과 논의하고 왕명을 내린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조선 시대의 이자는 살인적이다. 당시 봄에 쌀을 빌려주고 가을에 되갚는 장리의 경우 금리가 50%에 달했다. 보릿고개에 1냥어치 곡식을 빌리면 8~9개월 후인 가을 추수철에 1.5냥에 해당하는 곡식을 갚아야 했다. 이 정도면 ‘순한 맛’이다. 이자를 곱절로 내야 하는 갑리까지 성행하면서 백성들의 삶은 궁핍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세종대왕은 월 3%, 영조대왕은 연 20%로 이자율을 제한하기도 했다.하지만 추상 같은 어명도 지배층의 탐욕을 막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는 후일 조선을 안에서부터 무너지게 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됐다.

대항해시대를 이끌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17세기가 되면서 힘을 쓰지 못했다. 대신 네덜란드와 영국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특히 프랑스나 영국 등에 비해 작은 나라였던 네덜란드가 강대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현대 중앙은행의 시초로 일컫는 암스테르담 은행의 힘이 컸다고 한다. 암스테르담 은행의 설립으로 네덜란드는 당시 14군데나 됐던 조폐국에서 찍어내던 통화를 하나의 통화로 표준화할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예금을 받는 등 오늘날 은행과 유사한 업무를 시작했다. 암스테르담 은행의 시스템은 스웨덴의 ‘릭스방크’로 이어졌다. 릭스방크는 이전 은행들이 하지 못했던 대출 업무까지 시작하면서 스웨덴을 ‘북유럽의 사자’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릭스방크의 근대적 금융 시스템은 영국의 ‘영국중앙은행’으로 이어져 동인도회사와 함께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다. 넓은 영토와 인구를 가진 프랑스와 스페인이 영국과 네덜란드를 따라가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금융 시스템이라는 얘기도 있다. 금융 시스템은 국가의 흥망성쇠에 이처럼 무척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이달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국민에게 은행은 ‘이자 놀이’로 쉽게 돈 버는 ‘약탈자’ 이미지로 굳어진 지 오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금융 사고는 국민들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암호화폐 등 블록체인 산업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응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핀테크가 금융의 미래라고 하면서도 규제를 해소하는 것에는 인색했다. ‘관치 금융’은 모든 정부에서 없애겠다고 했지만 급할 때는 결국 은행을 찾았다.

7년 전쯤인가. ‘대한민국의 금융 시스템이 아프리카의 빈국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기사가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 물론 결국 조사 문항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이후에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얘기가 여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한국의 금융 시스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견고하지 못하다는 방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단지 은행들의 예대 금리 차를 공시하게 하고 대출 규제를 풀지 말지를 정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어수선한 분위기도 하나둘 정리되는 모습이다. 이제는 정부가 경제와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게끔 우리의 금융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나갈지를 보여줘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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