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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끝나다

최호근 고려대 사학과 교수

1943년 2월 2일





1943년 2월 2일 스탈린그라드에서 참혹하기 그지없던 전투가 끝났다. 1942년 8월 21일부터 199일 동안 지속된 전투는 200만 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9만 1000명의 독일군이 소련군에 항복했다. 그중에는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를 비롯한 22명의 장성도 포함됐다. 이로써 히틀러와 스탈린의 길고 긴 싸움에서 승리의 추가 소련으로 급격하게 기울었다. 승기를 잡은 소련군은 여세를 몰아 동부 유럽 전역에서 나치 독일의 군대를 압박했다. 폴란드 동부의 아우슈비츠 절멸수용소가 1945년 1월 27일에 해방됐고 5월 8일에는 나치 독일이 항복했다. 동부전선의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서부전선의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함께 2차 세계대전의 흐름을 가른 분수령이었다. 히틀러와 스탈린 모두 스탈린그라드에 모든 것을 걸었다. 왜였을까. 무엇보다 스탈린그라드는 유전지대인 코카서스 지방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자랑하는 전차 부대도 석유 없이는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이 지역을 장악한다면 스탈린도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뿐 아니었다. 스탈린그라드는 이름 그대로 ‘스탈린의 도시’였다. 그래서 히틀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도시를 손에 넣고 싶어 했다. 본래 이름이 차리친이었던 도시가 1925년에 스탈린그라드로 개명된 것은 당시 소련 서기장이었던 스탈린 우상화의 결과였다. 1961년에 지금의 이름 볼고그라드로 다시 바뀐 것은 스탈린 사후에 전개된 탈우상화 운동 덕분이다. 그 볼고그라드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방문한단다. 승전의 기억을 소환하고 싶어서일까. 푸틴 대통령이 승리를 기념하는 날에 맞춰서 볼고그라드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크렘린궁이 밝혔으니 말이다. 하지만 러시아 바깥의 사람들은 스탈린그라드를 또 다른 방식으로 기억한다. 일체의 후퇴를 금지해 엄청난 민간인 희생을 초래한 스탈린의 부정적 이미지를 푸틴과 그의 측근들은 정녕 생각하지 못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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