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박쥐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박쥐에 숙주하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왔다는 것. 그리나 실제로 원인 동물이 박쥐인지 여부는 재난을 막는데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동물은 박쥐 말고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로는 평생 한 번도 볼 일이 없는 동물인 박쥐가 어쩌다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게 됐는지, 전 인류를 일시에 마비시킨 ‘인수공통감염병’의 원인은 반드시 알아봐야 했다.
한국의 과학자 21명이 주축이 돼 설립한 ‘집현 네트워크’가 집필한 ‘첫 번째 기후과학 수업'은 인수공통감염병이 발생하는 이유를 기후재난에서 찾는다. 뜨거워지는 지구와 속절없이 녹아내리는 빙하, 나무가 사라진 숲은 우리 몸의 면역 체계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깊은 연관 관계를 갖는다. 인간의 환경 파괴로 서식지를 잃은 동물이 도시로 와 사람과 접촉하면서 새로운 인수공통감염병이 등장하고, 땅 속에 녹아 있던 고대 바이러스가 살아나 퍼지기도 한다.
저자들은 코로나19와 같은 보건재난은 기후재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 이에 대한 융합적 고찰이야말로 지구에서 인류가 생존하기 위한 필수적 항목이라고 주장한다.
우선 책은 기후변화의 원인을 알아보고 태풍부터 집중호우 폭염까지 몸으로 느껴지는 변화와 추이를 살핀다. 특히 이같은 극한 기후가 사회경제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확인한다. 책이 제시하는 사례는 몹시 구체적이며 흥미롭다. 예컨대, 극한 기후는 화물 운송을 방해한다. 비가 많이 오면 선박에는 싣는 짐의 무게를 덜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산불은 몹시 강력하다. 이제 인간은 산불을 스스로 끌 수 없어 막연히 비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같은 기후위기는 인간의 삶뿐 아니라 건강에도 영향을 준다. 책은 후반부에서 다양한 바이러스의 증상과 발생 경로를 살펴보는 데, 한국전쟁 당시 발발했다는 ‘한탄바이러스’부터 유치원에서 흔히 감염되는 ‘A형간염바이러스’까지 낯익고 친근한 사례를 만나볼 수 있다.
다만 기후재난과 보건재난을 함께 논의하는 책이라는 슬로건이 무색하게 보건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인류가 해야 할 기후위기 측면의 노력을 언급하지 않고 있는 부분이 아쉽다. 책은 코로나19 당시 한국 정부의 정책을 소개하는데, 이는 문제를 관리하는 방법일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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