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17년 만에 영국에 핵무기를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는 영국 언론 보도가 나왔다.
22일(현지 시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17일 뉴멕시코주 커틀랜드 미 공군기지를 이륙한 C-17 수송기가 10시간을 비행한 뒤 잉글랜드 서퍽에 있는 레이컨히스 영국 공군기지에 착륙했다. 커틀랜드 기지는 미 공군이 핵무기를 보관하는 주요 기지이며, 레이컨히스 기지는 미 공군 부대와 군 인력이 주둔하는 곳으로 유럽 최대 규모다.
전문가들은 더타임스에 이 수송기의 비행 경로가 ‘편도 수송’으로 보인다며 “영국이 2008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 핵무기를 보관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과 영국 정부는 논평을 거부했다.
이 수송기가 실어 나른 것은 B61 핵폭탄이며 이는 최근 영국이 새로 도입 계획을 공개한 F-35A 전투기 탑재용일 것으로 추정된다. 미군은 지난 수년간 레이컨히스 기지에서 핵폭탄 보관에 대비해 방공호와 방어막을 포함해 시설을 증·개축했다.
나토에서 핵 비확산을 담당했던 윌리엄 앨버키 퍼시픽포럼 선임연구원은 “(미군 수송기가) 영국에 무기를 내려놓고 미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며 “그들이 수년째 핵무기 보관을 위해 시설을 준비해 온 것은 잘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수송기가 트랜스폰더(응답기)를 켜둔 채로 비행했다는 데 주목하며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미국이 러시아에 자국의 의도를 알리려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영국은 지난달 말 키어 스타머 총리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위기 시에 나토 임무의 하나로 ‘전술 핵무기’를 투하할 수 있는 F-35A 전투기 12대를 새로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국 국방부가 21일 낸 정책 문서도 레이컨히스에서 가까운 마럼 공군기지에 배치될 F-35A 전투기가 미국의 핵무기를 탑재해 운용할 수 있다고 확인했다. 이 문건은 “마럼 기지에 배치될 신규 전투기들은 나토의 핵 임무 수행을 위해 사용 가능할 것”이라며 “이번 결정은 영국이 냉전 이후 자체 공중 발사 핵무기를 퇴역시킨 이후 처음으로 공군에 핵 역할을 재도입하는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영국은 트라이던트 핵미사일을 탑재한 해군 잠수함 기반으로만 핵전력을 갖추고 있다. 영국 공군의 핵 역할은 1998년 자체 공중 발사 핵무기를 공식 퇴역하면서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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