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빚을 성실하게 갚아온 서민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신용 대사면을 실시한다. 최소 272만 명에서 많게는 324만 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시장에서는 정부에서 빚 탕감과 신용 사면 정책이 거듭되면서 도덕적 해이 논란을 키우고 있다는 해석도 함께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11일 성실 상환자를 대상으로 2020년 이후 발생한 5000만 원 이하 연체 채무에 대한 정보를 삭제해준다고 밝혔다.
지원 대상은 2020년 1월 1일부터 올해 8월 31일까지 5000만 원 이하의 연체가 발생했지만 연말까지 연체금 전액을 상환한 개인 및 개인사업자다. 금융위는 6월 말 현재 해당 기준에 부합하는 인원이 약 324만 명이라고 밝혔다. 역대 최대 규모다. 이 중 약 272만 명이 이미 상환을 완료해 모든 조건을 충족했다. 최소 272만 명은 신용 사면의 혜택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7~8월에 지원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 성실 상환자가 더 추가되는 만큼 사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신용 사면 대상 금액은 기존보다 크다. 일단 사면 대상 연체 금액 기준을 기존(2000만 원)보다 높은 5000만 원으로 잡았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최대 290만 명을 대상으로 신용 사면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2000만 원 이하 채무 연체자가 지난해 5월 말까지 전액 상환하면 연체 기록을 삭제해주는 조건이었다. 문재인 정부도 코로나19 당시인 2020년 1월~2021년 8월 발생한 2000만 원 이하 소액 연체에 대한 신용 회복을 지원한 바 있다.
금융위는 사면 대상 연체 기준 금액을 5000만 원으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코로나19 관련 피해와 고금리 상황으로 경기 침체가 지속됐다”며 “과거 신용 회복 지원 당시와 비교했을 때도 비상 상황임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배드뱅크 설립을 발표하며 장기 소액 연체 채권의 탕감 기준 금액을 5000만 원으로 설정한 것도 이유로 꼽았다.
신용 사면 대상 기간도 약 6년으로 과거보다 긴 편이다. 지난해 약 290만 명을 대상으로 신용 사면을 실시했을 당시에는 연체 기준 기간이 약 2년이었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아직 코로나19 당시의 여파가 신용 측면에서 영향을 주고 있어 기간을 2020년 1월부터로 잡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신용 사면 조치로 연체 이력 정보를 5년 안팎 앞당겨 삭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금융권에서는 연체 이력을 최장 5년간 유지해서 신용점수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보통 금융사들은 연체액이 100만 원을 넘고 연체 기간이 90일 이상일 때 신용이 불량하다고 판단하고 신용평가사에 관련 정보를 공유한다. 이 경우 신용카드 발급이나 대출 같은 금융 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생긴다.
이번 신용 사면 대상 연체자 중 약 80%는 지난해 신용 사면 조치 직후인 2024년 2월 이후에 발생한 것으로 금융위는 추정하고 있다. 또한 과거 조치 대상이 아니었던 2000만 원 초과 5000만 원 이하 성실 상환자 역시 신용 회복 지원을 제공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금융위는 설명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대규모 신용 사면을 정부가 반복하는 데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일부 서민과 소상공인의 경우 빠른 사면을 통한 재기 지원이 필요하지만 계속되는 신용 사면은 금융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돈을 제때 갚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생각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신용사회의 기본이 제때 돈을 갚는 것”이라며 “이런 식으로 정권 때마다 대규모 빚 탕감과 신용 사면, 추가 대출 지원을 해주면 누가 열심히 대출을 상환하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어려운 이들에 대한 지원은 정부 예산을 통해서 해야지 금융의 근간을 흔들면서까지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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