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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의 위기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요즘 뉴스를 보면 정치가 일상적인 혼란을 넘어 단단히 고장이 난 듯 한 느낌을 받는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최근 퓨리서치센터가 28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중간값 58%에 해당하는 성인들이 자국의 민주주의 작동 방식에 불만을 표시했다. 미국인의 60%,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거의 10명 중 7명이 이런 견해에 동의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독재보다 민주주의를 선호하지만 작동 방식에 대한 불만과 실망이 광범위하게 퍼진 상태다.

이 문제를 꺼내 들면 특정 연령대에 속한 사람들은 종종 1970년대를 떠올린다. 그 당시에도 서구 민주주의는 기운이 다한 듯 보였다.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로 대중의 신뢰가 무너졌다. 하지만 1980년대에 상황이 반전됐다. 경제 개혁과 기술적 역동성이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켰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안돼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자유민주주의가 승자로 우뚝 서면서 1970년대의 위기는 쇄신의 서곡이었음이 입증됐다.

하지만 오늘날의 문제는 그때와 다르고 더 깊어 보인다. 이전의 위기는 관리의 문제였다. 정부는 제 몫을 하지 못했지만 국민은 여전히 민주주의 체제를 신뢰했다. 연방대법원은 존경 받았고, 의회는 제대로 기능했으며, 언론의 권위는 굳건했다. 국민들은 규칙이 시행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규칙을 믿지 않는다. 법원, 언론, 대학, 심지어 선거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중앙 기관과 핵심 제도는 편향됐다는 견해가 대세를 이룬다.

마이클 루이스는 자신의 팟캐스트 ‘Against the Rules’ 첫 회에서 여느 때처럼 정확히 판정을 하고 있는 심판을 향해 “당신 형편없어”라고 고함을 지르는 스포츠 팬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문제는 행위가 아니라 인식이다. 일단 편파적이라고 낙인 찍힌 심판은 제 아무리 정확한 판정을 해도 좀처럼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 법, 언론과 정치에서도 동일한 상황이 발생한다. 심판이 투명하지 못하거나 불신을 받으면 경기 전체가 부당한 것처럼 느껴진다.



루이스의 주장은 책임성 하나만으로는 민주주의를 고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투명성이 높아지면 편견이 더 뚜렷하게 드러나고 냉소주의를 오히려 부추길 수 있다. 이것이 도널드 트럼프의 독특한 매력을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중립적인 척하는 태도를 완전히 버렸다. 그런 솔직함이 지지자들의 경계심을 풀게 만든다. 또 트럼프의 부상은 좌파와 우파 포퓰리즘 사이의 더 깊은 분열을 드러낸다. 불공정을 내 일자리와 소득, 미래와 연결지어 개인적인 문제로 인식할 때 사람들은 우익 포퓰리스트쪽으로 돌아선다. 우익 포퓰리스트들은 이들의 고통은 엘리트와 외부 세력의 배반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몇 년 간 탈산업화 등 사람들을 가장 불안하게 만든 충격은 사회적 불공정보다 개인적 불공정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노동자들은 단지 타인이 가난하다는 것보다 자신이 대체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두려움은 분노를 낳고,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과 보호주의, 국경 통제 등을 주장하는 우파의 서사와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관료제부터 언론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핵심 제도를 실추시키려는 우파의 오랜 캠페인이 더해지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1970년대의 위기는 민주주의가 실질적인 성과를 내도록 지도자들이 앞장서면서 끝났다. 당시 사람들은 정부의 역량을 의심했지만 정당성 자체를 의심하진 않았다. 오늘날의 도전은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문제다. 제도는 여전히 작동하지만 공정성의 후광을 잃었다. 시민들이 더 이상 심판을 신뢰하지 않으면 규칙을 따르지 않게 된다.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의 포스트-심판 시대에 들어섰다. 제도는 믿기 어렵고 공정성이 조롱을 당하며, 시민들은 정책이 아닌 정체성에 따라 편을 가른다. 1970년대의 위기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고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을 때 회복됐다. 지금 우리의 위기가 끝나려면 시민들 사이에서 민주주의는 다시 믿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나와야 한다.

50년 전 사람들은 정부를 의심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한다. 다음 민주주의의 회복은 유능한 관리자나 기술적 개혁에서 오지 않을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규칙인 신뢰의 재발견에서 올 것이다. 심판이 공정을 기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믿음이 생길 때까지 우리는 민주주의를 향해 “심판, 너 정말 형편없어”라고 계속 외쳐댈 것이다. 그리고는 왜 이 경기가 더 이상 할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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