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부실 기업 퇴출이 더딘 탓에 우리 경제가 구조적 성장 둔화에 빠졌다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왔다. 12일 한은 보고서에 따르면 2200여 개 외부감사 대상 기업을 분석한 결과 2014~2019년 퇴출 고위험군 기업(전체의 3.8%) 가운데 실제 퇴출된 기업은 2.0%에 불과했다. 코로나19 이후(2022~2024년)에는 퇴출 고위험군 기업 3.8% 중 0.4%만 정리됐다. 한은은 이들 한계 기업이 제때 정리됐다면 2014~2019년 경제 전반의 투자 규모와 국내총생산(GDP)이 실제보다 각각 3.3%, 0.5% 증가하고 2022~2024년에도 각각 2.8%, 0.4% 더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생산적 금융’을 내세우면서도 기업 구조조정에는 소홀했던 이재명 정부가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부동산에 묶인 시중 자금의 물꼬를 기업·산업 투자로 돌리겠다는 ‘생산적 금융’의 정책 방향은 바람직하다. 관건은 자금 지원이 한계 기업들의 연명 수단이 되는 것을 막고 기업 혁신과 투자, 생산성 향상 등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투자가 늘어난 기업은 상위 0.1%(약 23개사)에 불과했다. 나머지 기업들의 투자 부진은 자금 조달의 어려움보다는 수익성 악화가 주요 원인이었다. 경제 활력을 되살리려면 정부나 금융기관 등의 지원보다 구조 개혁 등을 통한 기업 역동성 회복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생산성 둔화로 해외 투자만 급증하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률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생산적 금융’을 효율화하는 동시에 기업의 진입과 퇴출이 원활해질 수 있도록 산업 생태계 조성에 나서야 한다. 한은에 따르면 3년째 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이른바 ‘좀비 기업’ 비중은 지난해 말 17.1%로 2010년 이후 최고치였다. 부실 기업이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면 유망 기업조차 크기 힘들다. 낡은 세포가 빠져나가야 새로운 세포로 채울 수 있다. 자금은 초기 혁신 기업과 신산업 투자, 주력 산업 경쟁력 유지 등에 집중 투입해야 한다. 5대 금융그룹이 약속한 생산적·포용적 금융 규모만 508조 원에 이르는 만큼 은행 건전성 관리 능력도 필수적이다. 노동시장 유연화 등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 개혁을 가속화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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