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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환율? 정치인부터 각성해야

이상훈 정치부장

원화 급락, 弱달러 속 구조적 원인

정부, 절박한 개인·기업 탓 무책임

돈 뿌리기·기업 발목 잡기가 부담↑

국채발행 줄이고, 예산집행 꼼꼼히

최근 개인·기업 불문 달러화 선호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원화 가치가 급속히 하락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환율에 대한 고민이 절실해 보이지 않는다. 사진은 한 시중은행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세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생전에 정치인을 ‘나쁜 기수(騎手)’에 빗댔다. 정치인은 안장에 오래 앉아 있는 데만 몰두한 나머지, 자신이 어디로 가는 지조차 신경 쓰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한 마디로 정치인들은 정책을 제대로 만드는 것보다 권력 유지에 더 급급하다는 것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을 두고 벌어지는 일을 유심히 살펴보면 슘페터의 통찰이 가슴에 와닿는다. 12·3 계엄이 발생한 지 1년 만에 우리 경제는 충격에서 벗어나 빠르게 회복 중이다. 다만 원화 가치가 급속히 빠져 이젠 달러당 1500원 돌파가 불안할 지경까지 왔다.

문제는 달러화 인덱스가 최근 1년간 하락 추세를 보이는 와중에 원화가 가파른 미끄럼을 타고 있는 점이다. 실제 유로화만 해도 같은 기간 달러화 대비 강세를 보였다. 원화 하락이 달러 강세에 따른 증상이기보다 우리만의 특수한 구조적 변화에 기인한 결과물일 수 있다는 뜻이다.

원·달러 환율을 둘러싼 여건을 보면 뭐 하나 호락호락한 게 없다. 기업과 개인 모두 달러화를 신줏단지 모시듯 할 형편이다. 당장 기업만 해도 연간 최대 200억 달러씩, 총 2000억 달러를 미국에 들이부어야 한다. 조선업의 미국 투자까지 합치면 총 3500억 달러에 이른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생존을 걸고 미국 투자에 나서는 판에 벌어 들인 달러를 원화로 바꿀 유인 자체가 낮다.

부동산이 막힌 개인도 마찬가지다. 압도적 장기 수익률, 인공지능(AI) 문명을 설계하는 빅테크 중심의 포트폴리오, 탄탄한 투자 대기 수요 등은 우리 증시와 비교 자체가 어렵다. 환전 업무를 빌미로 증권사를 단도리친다고, 국내 주식에 더 투자하라고 국민연금을 압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를 비롯해 정치인들이 정작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단기적으로 확장 재정을 경계하고 중장기적으로 한국에 투자하게끔 법과 규제 등을 정비하는 일이다.

일단 돈을 적재적소에 잘 써야 한다. ‘없는 돈’을 만들겠다며 정부의 빚문서 격인 국채 발행을 남발하고, ‘있는 돈’을 엉뚱한 곳에 뿌려서는 진짜 답이 없다. 최근 1년간 원화가 주요 통화 대비 모두 약세를 기록한 데는 유동성이 많이 풀린 게 결정타였다. 그런데도 내년도 예산안에서 적자국채 발행 규모는 110조 원에 이른다.

거대 여당이라면 책임감을 갖고 예산 집행에 더 예민해져야 한다. 단기 지원 위주의 각종 보조금, 지역 민원성 인프라 예산, 경기진작 효과보다 재정부담이 더 크다는 지역화폐·소비쿠폰 집행 등은 꼼꼼히 따질 필요가 있다. 자기 브랜드, 민원성 예산을 칼질하는 읍참마속없인 환율 쏠림을 되돌리기 어렵다. 선거를 핑계로 삼을 수는 없다.

기업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시각도 교정할 부분이 적지 않다. 겉만 번지르르한 립서비스보다 한국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만드는 게 우선이다. 그러면 기업은 오지 말라 해도 온다. 그런데도 주 52시간, 노란봉투법, 자사주 의무소각, 법인세 및 전기료 인상 같은 규제가 한꺼번에 쏟아지니 기업으로선 고국을 등지지 않고는 버텨낼 재간이 없게 된다.

원화 가치 하락이 두려운 이유는 방치하면 수입물가 급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결과적으로 근로소득의 값어치를 떨어뜨리고 자본소득의 가치는 키운다. 알토란 아파트에 달러 자산도 많은 부자들이야 돈을 더 벌겠지만, 유리 지갑이 대부분인 중산층과 서민은 인플레이션 증세에 고스란히 노출돼 세금만 더 내기 십상이다. 별다른 자산이 없는 청년층이 더 힘들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난마처럼 얽힌 환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선 방만하게, 느슨하게 운용됐던 돈줄부터 바짝 죄일 필요가 있다. 정치인들도 이런 문제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진짜 위기는 다 알면서도 방관하는, 혹은 이게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오만에서 비롯된다. 환율 잡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난공불락의 난제도 아니다. 정부가 각자도생에 여념이 없는 개인과 기업에 영(令)이 서려면, 아니 조금이라도 설득하려면 솔선수범하는 모습부터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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