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최근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한국은 인공지능(AI) 잠재력이 크지만 지리적·구조적으로 에너지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초인공지능(ASI)’에 대비하기 위해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가 필수지만 우리나라의 국토 여건상 재생에너지 위주로 공급을 충당하기는 어려운 상황을 꼬집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전력망 탈석탄을 추진하면서도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원자력발전소나 수소 기술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7일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일정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 AI 시대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AI로 생산성 혁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필요하고 이를 유치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입지 요건은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고위 시나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97GW(기가와트)였던 전 세계 데이터센터 설비용량은 2035년께 404GW로 10여 년 만에 4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기간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전력량은 416TWh(테라와트시)에서 1719TWh로 급증한다. 이는 지난해 한국의 총 전력 소비량(557.1TWh)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여기에다 ‘2050 탄소 중립’이라는 글로벌 트렌드를 고려하면 탈탄소 전력이라는 요건까지 갖춰야 한다.
문제는 탈탄소의 대표 격인 재생에너지의 전력 발전은 ‘간헐성’을 띤다는 점이다. 태양광발전소의 경우 일출과 일몰 사이에만 발전이 가능한 데다 일조량과 온도가 높은 낮 시간대 발전량이 급증하는 특징을 가진다. 일반적인 전기수요는 인간 활동량에 맞춰 낮 시간대 정점을 찍기 때문에 태양광만으로 충족시키는 데 어려움이 없다.
반면 데이터센터 전력수요는 24시간 내내 일정 수준을 유지한다. 햇빛이 없는 야간에는 태양광만으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연계한다고 해도 분산 가능한 시간대가 일출·일몰을 기점으로 4~8시간에 불과해 한계가 명확하다. 풍력 발전소는 사정이 조금 낮시만 계절에 따라 발전 효율 차이가 크게 달라져 안정적인 보급 계획을 세우기 쉽지 않다.
여기에 우리나라처럼 남북으로 길고 좁은 국토 형태와 높은 인구밀도는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손 회장이 언급한 ‘지리적·구조적 요인’이 바로 이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중국의 국토는 경도가 넓어 동·서부 일출·일몰 시간이 4시간 가까이 차이 난다. 미국 뉴욕에서 오후 6시에 해가 져도 오후 10시까지는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위치한 태양광발전소의 전기를 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 역시 고비사막과 티베트 고원에서 생산한 전력을 동부 해안 지대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대규모 전력망을 구축하는 중이다. 유럽은 이미 각국 전력망을 연계해 필요에 따라 전기를 사고 팔며 전력망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국토 폭이 좁은 데다 전력망이 다른 나라와 연결되지 않은 ‘전력섬’ 구조 탓에 이런 연계 효과를 누릴 수 없다.일각에서는 양수발전소가 낮 시간대 넘치는 재생에너지를 저장할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토 전체가 고기조산대인 한국은 산지가 완만하고 풍화·침식이 오래 진행돼 적합한 지역을 찾기 어렵다
높은 인구밀도도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재생에너지 확대에 걸림돌이 되는 요인이다. 좁은 국토에 산지가 70% 이상이다보니 대부분의 평지가 이미 도시나 농지로 사용되고 있어서다. 같은 면적의 태양광발전소를 구축하는데 토지구입비용부터 다른 나라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유럽에서 태양광발전 단가가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스페인만 해도 한국과 인구는 비슷한데 비해 국토 면적은 5배인데다 대부분 완만한 구릉지다. 때문에 한국의 태양광발전 균등화 발전단가(LCOE)는 ㎾h(킬로와트시)당 0.111달러로 세계 평균(0.043달러)의 2.6배에 달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결국 데이터센터와 같이 24시간 안정적인 전력이 필요한 부문을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소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기복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은 “원전은 꾸준히 전기를 생산하는 기저 전원으로 활용할 때 가장 효율적”이라며 “재생에너지 발전원은 간헐성을 제거하는 데 추가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으므로 기저 전원은 원전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한국은 원자력 분야에 매우 숙련된 인력군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를 지렛대 삼아 소형모듈원전(SMR)을 건설하고 실증할 국가 산업단지를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린수소도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차세대 대안으로 떠오른다. 낮 시간대 남아도는 재생에너지를 수소 형태로 저장한 뒤 전기가 부족할 때 연료전지나 액화천연가스(LNG)·수소 혼소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40년까지 석탄발전소를 폐지하면서 해당 부지에 수전해 설비와 액화수소 저장 시설을 구축하면 기존 전력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빠르게 수소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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