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저가 전기차(EV) 공세에 맞서 일본의 ‘경차(K-Car)’ 제도를 본뜬 새로운 소형 EV 규격을 도입하기로 했다. 과도한 기술 규제를 완화해 르노·폭스바겐 등 유럽 완성차 업체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중국산 EV의 시장 잠식을 차단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조만간 자동차 분류 체계에 ‘소형 EV’ 항목인 ‘E카(E-Car)’를 신설하는 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법안은 수년 내 시행을 목표로 하며 차체 크기와 중량, 모터 출력 등에 상한선을 둘 계획이다. 회원국별로 자동차세 공제 혜택을 주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번 조치의 핵심은 ‘비용 절감’이다. 그동안 EU는 소형차에도 운전자 졸음 방지, 차선 유지 시스템 등 고가의 첨단 안전장치 탑재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E카에 대해서는 이러한 기술 요건을 대폭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베아트릭스 카임 독일 자동차연구센터 연구원은 “기술 사양 완화로 저렴한 부품 사용이 가능해지면 생산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현재보다 판매 가격을 10~20% 낮춰 1만 5000~2만 유로 수준으로 차량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U의 이 같은 행보는 저렴한 중국산 EV로부터 자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EU는 이미 중국산 EV에 최대 45.3%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지만 비야디(BYD)를 필두로 한 중국 업체들의 유럽 내 EV 시장 점유율은 1년 만에 9%에서 12%로 급증했다. 특히 BYD의 공세가 매섭다. 유럽 자동차 제조 업체 협회인 ACEA에 따르면 BYD는 9월 유럽에서 2만 4963대의 신차를 판매했는데 1년 전 인도량(5013대)의 5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 협회는 EU·영국·아이슬란드·리히텐슈타인·노르웨이·스위스 전역의 차량 판매를 추적한다. 이에 EU는 새 분류를 만들어 유럽차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이 분류에 적용될 개발 보조금 및 세금 공제 등의 혜택 역시 ‘역내 생산’이라는 조건을 내걸 계획이다. 헝가리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유럽 생산 기반이 약한 중국 기업들을 견제하겠다는 포석이다.
이와 관련해 닛케이는 EU가 한때 일본의 경차 제도를 “유럽차의 진입을 막는 비관세장벽”이라고 비판한 것을 언급하고 중국산 공세 속에 “EU가 기존 태도를 바꿔 독자적인 소형차 분류를 설정하게 됐다”고 짚었다. EU의 전략이 일본 완성차 업계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닛산의 ‘사쿠라’, 혼다의 ‘N-ONE e:’ 등 이미 경형 EV 라인업을 갖춘 일본 기업들이 별도 개조 없이 유럽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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