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ISD 두 번 패소없다고 장담할 수 있나
입력2018-06-08 17:43
수정2018-06-08 21:16
지면 27면한국 정부가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무산과 관련해 이란 기업이 제기한 투자자국가소송(ISD)에서 사실상 패소했다.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 국제중재판정부는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이란 기업과 맺은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계약을 해지하고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은 것이 이란과의 투자보장협정에 명기된 ‘공정 및 공평한 대우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우리 정부에 해당 기업 대주주에게 73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소식이 전해진 후 정부가 중재판정문을 면밀히 분석한 후 취소 신청 여부 등 후속조치를 검토한다고 부산을 떨고는 있지만 승산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번 소송 결과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한 다른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엘리엇은 지난 4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ISD 전 단계인 중재의향서를 제출한 바 있다. 양사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진 것이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청와대의 압력 때문이라는 사법부의 판단이 빌미를 줬다.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1·2심에서 직권남용 등으로 유죄를 받은 것도 우리에게는 유리할 게 없다.
물론 이란 기업과의 소송에서 졌다고 다른 ISD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리라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들이 장기적으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결정을 하지 못하고 권력에 휘둘린다면 ISD에서 승소할 확률은 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용케 엘리엇을 막는다고 해도 제2, 제3의 ISD 희생양은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 현실화한다면 한국이 해외투기자본의 봉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제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 외풍에 시달리지 않고 오직 국민의 이익만을 바라보며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과거 국민연금을 정치권력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를 공사로 분리하고 기금운용위원회를 복지부에서 분리해 실질적으로 독립성을 부여하는 방안을 다시 검토해보기 바란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