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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제의 ‘남순기’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입력2026-01-21 18:13

지면 30면

건륭제는 1784년 마지막 남순(南巡) 도중에 남쪽으로의 순례 여행이 지닌 의미를 신하들에게 선포했다. 1784년 4월 13일(음력 3월 24일) 발표한 ‘어제(御製) 남순기’에 그 내용이 담겨 있다. 약 70일 동안의 긴 여정 끝에 강남의 중심지 항저우에 도착해 그 감회와 의미를 총결산한 것이다.

1784년은 건륭제가 제위에 오른 지 49년이 되는 해였다. ‘남순기’에서 건륭제는 이렇게 자신의 치세기를 중간 정리했다. “짐이 지난 50년을 지내면서 무릇 두 가지 대사를 거행했는데, 하나가 서사이고 다른 하나가 남순이다.” 여기서 건륭제가 스스로 손꼽았던 두 가지 큰일 가운데 ‘서사’는 서북 지역으로의 군사 원정으로, 몽골의 중가르 세력을 박멸하고 그 지역에 ‘새로운 강역’인 신장을 설치한 것이다.

그는 서사에 대해서 “빨리 해야 하고 늦춰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봤던 반면 남순은 “천천히 하되 서둘러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서쪽 변경으로의 군사 원정을 먼저 해결하고 남순은 1751년부터 1784년까지 총 6번에 걸쳐 수행했다. 마침 6이라는 숫자는 건륭제의 롤모델이었던 할아버지 강희제가 남순을 수행했던 횟수와 일치했다.

[역사 속 하루] 건륭제의 ‘남순기’
건륭제 남순도. 베이징 고궁박물관

이처럼 신중하면서도 자주 남순을 해야 했던 것은 물관리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그는 “한 번이라도 물관리에 허술함이 있으면 백성의 생명이 그에 달려 있으니 어찌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직접 황태자와 신하들을 대거 동원해 지방 행차에 나섰다. 그리고 지방 관리들과 백성들까지 직접 황제가 물관리의 현장을 답사하고 문제를 처리하는 장면을 보고 감동하기를 기대했다.

그만큼 청 제국에 물관리는 중요했다. 물 문제의 핵심은 통제하기 어려운 황허강의 범람에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황허강에 종속된 대운하의 물자 유통에 있었다. 그렇지만 건륭제가 과연 ‘남순기’의 선언처럼 남쪽 지역 순방을 통해 물관리에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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