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통합인가, 독점의 수단인가: ‘끼워팔기’의 두 얼굴 [이병주 변호사의 글로벌 판례로 찾는 경영 전략 Edge]
이병주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입력2026-01-25 08:00
수정2026-01-30 16:46
이병주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전략회의실에서 신규 사업 본부장이 보고한다. “대표님, 우리 주력 상품에 신규 서비스를 패키지로 묶어 판매하면 어떨까요? 고객 충성도가 높으니 편의도 높이고 경쟁사도 견제하는 완벽한 전략입니다.” 당신은 고개를 끄덕인다. 인기 상품에 신규 서비스를 결합하면 수익을 극대화하고 경쟁사 추격도 따돌릴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법의 잣대는 이 판단 뒤에 숨은 ‘구매 강제성’을 파고든다.
기업 입장에서 ‘끼워팔기(Tying)’는 효율적 자원 배분의 일환이다. 이미 확보한 시장 지배력을 활용해 인접 시장으로 영향력을 넓히는 건 경영학 교과서의 답안이다. “제품을 묶어 팔면 가격도 올리고 소비자 만족도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는 의사결정권자에게 합리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경쟁당국은 이를 혁신이 아닌 경쟁자 축출을 통한 지배력 유지 수단으로 의심한다.
코닥 사건: 부품 독점이 서비스 시장을 잠그다
글로벌 경쟁법 사례는 경영 판단이 법적 리스크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992년 미국 코닥(Kodak) 사건이 대표적이다. 코닥은 복사기와 마이크로필름 장비를 제조·판매하면서 부품과 수리 서비스도 제공했다. 그런데 독립 서비스 사업자들(ISO)이 코닥보다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 시장에 진입했다. 일부 고객은 이들의 서비스가 더 낫다고 평가했다.
코닥은 사업 모델을 바꿨다. 자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에게만 교체 부품을 판매하고, OEM 업체들과도 합의해 부품이 경쟁사에 흘러가지 않도록 했다. 이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경쟁사들은 부품을 구할 수 없었고, 고객들은 다시 코닥 서비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경쟁 서비스 사업자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코닥이 부품 독점을 이용해 서비스를 끼워팔아 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코닥은 장비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 중이므로 가격을 올리는 건 오히려 불리하며, 경쟁사들이 자사 투자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론이 아닌 현실을 봤다. 서비스 가격은 올랐지만 장비 판매가 줄었다는 증거는 없었다. 고객들이 이미 고가 장비를 구매해 코닥에 ‘고착(Lock-in)’된 상태에서 코닥은 부품 시장 독점력을 이용해 서비스 시장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디지털 시대의 끼워팔기
고착과 봉쇄의 논리는 디지털 시대로 이어졌다. 2001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사건에서는 윈도우 운영체제(OS)와 인터넷 익스플로러(IE) 브라우저 결합이 문제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넷스케이프가 브라우저 시장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OS 시장으로 진입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이에 PC 필수재라고 할 수 있는 윈도우에 자사 IE 브라우저를 번들링하고, 삭제할 수 없도록 설계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와 IE가 “별개 제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 소프트웨어 통합이 하드웨어 끼워팔기와 달리 친경쟁적 효과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OS에 소프트웨어 기능을 통합하는 건 과거 위법 판단 사례와 다르며, 소비자 이익을 고려해 무조건 위법으로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2004년 EU는 다시 마이크로소프트를 문제 삼았다. 이번엔 미디어 플레이어(WMP) 결합이었다. EU집행위원회는 미디어 플레이어 취득 조건으로 OS를 제공한 게 불법한 끼워팔기라고 봤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미디어 기능이 윈도우와 통합된 단일 제품이며, 무료로 제공되고, 고객은 경쟁사 제품을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U법원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행위를 위법하다고 보았다. 무료처럼 보여도 그 비용은 OS 가격에 포함됐다고 봤다. 더 중요한 건 OEM 제조사와의 관계였다. OEM은 마이크로소프트 라이선스 계약상 미디어 플레이어 없이는 윈도우 OS 라이선스를 받을 수 없었다. 윈도우 PC 판매 대부분이 OEM을 통해 이뤄지고 있었다. OEM에 대한 강제는 결국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되어 사실상 소비자는 마이크로소프트 미디어 플레이어를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리얼플레이어 같은 경쟁사 제품 배포 경로가 차단되고 시장 경쟁이 봉쇄됐다고 판단했다.
의사결정자가 던져야 할 질문
법원이 들이대는 잣대는 명확하다. 첫째, 별개 제품인가 기능적으로 통합된 단일 제품인가? 경쟁자 진입 차단을 위한 패키징인지, 기술 혁신에 따른 시스템 통합인지가 핵심이다. 둘째, 구매 강제가 발생했는가? 경쟁력 있는 제품을 사려는 고객이 원치 않는 제품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살 수밖에 없었는지가 관건이다.
처음 전략회의실로 돌아가 보자. 1등 주력 제품에 신제품을 묶어 판매하자는 제안 앞에서 의사결정권자는 세 가지를 물어야 한다. 하나, “이게 기능적 통합인가, 아니면 단순 패키징인가?” 두 제품이 독립된 시장을 형성한다면, 강제로 묶는 순간 리스크가 시작된다. 둘, “고객이 신제품 구매를 거부할 자유가 실제로 있는가?” 1등 제품을 사려는 고객이 원치 않는 제품까지 반드시 사야 하는 구조라면, 이는 구매 강제다. 셋, “우리 전략이 고객에게 혜택을 주는가?” 경제적 후생을 높이는 ‘혁신’인지, 아니면 경쟁 대안을 제거해 고객을 고착시키는 ‘장벽’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끼워팔기는 승자의 특권이 아니라 경쟁 봉쇄의 무기로 문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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