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만큼 전환 역량도 중요하다
김지희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기술 발달 자체도 필요하겠지만
직무 재설계·인력 교육·표준 등
사회 적응 위한 투자에도 힘써야
입력2026-01-26 05:00
지면 29면
지난주 정부가 150조 원 규모의 ‘국가성장펀드’를 조성하고 그중 30조 원을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전략산업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미래 먹거리를 위한 시의적절하고 과감한 결단이다. 하지만 국가 차원의 기대감 뒤편에는 “너무 빠르게 변해서 혹시 나만 도태되는 건 아닐까,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라는 두려운 마음이 공존한다.
이달 초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에서 필자가 참석한 세션이 바로 이 기대와 두려움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었다. 세션 제목이 ‘AI and Productivity: Is This Time Different?(AI와 생산성: 이번에는 정말 다른가)’였는데 경제학자들이 굳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건 과거의 경험 때문이다. 수십 년 전 컴퓨터가 등장했을 때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솔로는 “컴퓨터는 어디에나 있지만 생산성 통계에서만큼은 볼 수 없다”며 책상마다 컴퓨터가 놓여도 생산성 지표는 한참 정체됐던 점을 꼬집었다. 혁신 기술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긴 시차가 존재해왔던 것이다. 경제학자들의 질문은 결국 “AI는 이 시차 없이 우리 경제를 빠르게 변하게 할까”였다.
세션에서의 논의는 차분했다. 경제학자들은 ‘보멀의 비용 질병(Baumol’s Cost Disease)’을 들어 과도한 환상을 경계했다. AI가 첨단산업의 효율을 100배 높여도 우리 경제에는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필수적인 돌봄·대면 서비스 같은 부문이 존재한다. 기술 부문의 가격이 내려가면 상대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기 어려운 ‘사람 중심’ 부문의 비용에 대한 비중이 커지는데 이는 전체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즉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경제 전반으로 퍼지는 데는 구조적인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당장 기업 현장에서 부딪힐 더 직접적인 장벽으로 도입 단계의 ‘생산성 J커브(Productivity J-Curve)’를 지적했다. 미국 제조업 데이터를 보면 혁신 기술은 도입 초기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렸다. AI 도입은 버튼 하나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업무를 쪼개고(어떤 일을 AI에 맡길지), 데이터를 정리하고(무엇을 기록할지), 책임을 재배치하고(누가 승인하고 최종 책임을 질지), 성과를 새로 측정해야 한다(무엇을 ‘일 잘함’으로 볼지). 교육과 시행착오, 보안·규정 점검, 산출물 검수 같은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비용’이 먼저 커지며 생산성은 한동안 정체될 수 있다.
요즘 실무에서 말하는 ‘AI 워크슬롭(workslop)’도 같은 맥락의 문제다. 초안을 다듬고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 쌓이면 단기 효율은 떨어질 수 있다. 특히 프로세스가 굳어 있는 조직일수록 이 비용이 크게 느껴지고 기존 관리·협업 규칙 등의 조직자본이 흔들릴 수 있다. 다만 이는 실패라기보다 적응 과정이다. 전환이 끝나고 조직이 새로운 방식에 적응하는 순간 생산성은 J자 곡선을 그리며 반등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30조 원 투자의 방향성은 더욱 중요해진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성능 칩과 데이터센터 같은 ‘기술 그 자체’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필수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최고의 엔진을 샀어도 운전하는 법을 모르거나 도로가 정비되지 않았다면 속도를 낼 수 없듯 기술 투자는 ‘전환’과 ‘적응’을 위한 투자와 짝을 이뤄야 비로소 빛을 발할 것이다.
즉 기업들이 ‘J커브의 계곡’을 무사히 건너도록 돕는 데에도 투자가 필요할 수 있다. 직무를 재설계하고, 인력을 재교육하고, 데이터 표준과 보안 체계 같은 ‘조직 자본’을 구축하는 일이다. AI는 데모 영상 속에서가 아니라 훈련된 직원들이 정비된 프로세스 위에서 능숙하게 다룰 때 비로소 ‘생산’이 된다.
‘이번에는 정말 다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AI 기술의 성능 성적표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설계할 전환의 과정에 달려 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의 ‘전환 역량’도 그 속도에 발을 맞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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