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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투자는 성장의 마중물…자본·산업·지역 연결고리 돼야”

■이대희 한국벤처투자 대표

모태펀드는 민간투자 이끌고 위험 분담하는 버팀목

AI·딥테크 등 첨단 산업에 장기 자금 집중 공급돼야

투자·회수 선순환 위한 M&A·세컨더리 활성화 시급

벤처는 ‘K자형 성장’ 극복할 한국 경제 도약의 해법

입력2026-01-26 17:47

수정2026-01-26 22:12

지면 29면
김정곤

김정곤

논설위원

이대희 한국벤처투자 대표가 2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혁신 벤처와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이대희 한국벤처투자 대표가 2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혁신 벤처와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새해 들어 주식시장이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K자형 성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쏠림에서 볼 수 있듯이 산업 간 격차가 크고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내수 부진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K자형 성장을 극복할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벤처·스타트업을 꼽았다. 모태펀드 운용사인 한국벤처투자는 2005년 설립돼 국내 벤처·스타트업 생태계에 마중물을 붓는 역할을 21년째 하고 있다. 모태펀드 규모도 설립 당시보다 10배가 커졌다. 모태펀드 조성액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1조 3313억 원, 출자자 조합 규모는 1426개에 총 47조 6376억 원에 달한다. 이대희 한국벤처투자 대표는 2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벤처 투자는 경제성장을 이끄는 마중물”이라며 “민간자본의 글로벌·딥테크 투자를 끌어내고 보완해주는 버팀목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벤처투자는 단순히 투자를 집행하는 기관을 넘어 자본·산업·지역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며 “국내에서 성장한 기업이 글로벌 무대로 나가고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정부와 지역 생태계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이 당면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최근 벤처·스타트업 업계 상황은 어떤가.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첨단기술 경쟁이 벌어지고 있고 이 흐름이 글로벌 자본 전쟁으로 확장되는 상황이다. 기술 자체보다 기술에 언제, 어떤 구조의 자본이 투자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좌우되고 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자본 투자가 따라주지 않으면 성장 단계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과거처럼 내수 시장에서 차근차근 성장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성장 경로와 자본 흐름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과 인구구조 변화라는 구조적 제약 속에서 다시 한번 도약해야 하는 상황이다. 혁신 벤처·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자본 투자의 역할이 과거보다 훨씬 중요해졌다.

-한국벤처투자는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그동안 정부 자금을 민간 벤처 투자로 연결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정부에서 자금을 받아 모태펀드를 조성하고 그 자금을 벤처투자사(VC)에 출자해 다시 벤처·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재간접펀드(Fund of Funds) 구조다. 정부 자금을 바탕으로 1000개가 넘는 펀드에 출자해왔고 현재까지 연평균 약 8% 수준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벤처 투자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축적해왔다. 지금은 역할을 한 단계 확장해야 할 시점이다. 출자와 관리를 넘어 혁신 기업이 성장하고 스케일업할 수 있도록 자본의 흐름을 설계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민간 자본이 벤처·스타트업 생태계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열고 성장 단계에서 자금 공급이 끊기지 않도록 연결하는 것이다. 지금 벤처·스타트업은 글로벌로 나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이들이 글로벌로 진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줘야 한다. 투자 시장에서의 역할을 넘어 벤처·스타트업의 성장과 생태계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현장에서 보는 업계의 어려움은 뭔가.

△초기 투자까지는 비교적 쉽게 이뤄지지만 후속 투자나 대규모 투자, 글로벌 진출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자금이 끊기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나 딥테크 기업일수록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단순한 투자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 단계별 자본 연결 구조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고 있다. 초기·중기·스케일업 성장 단계별로 자금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첨단기술 투자를 강조하고 있는데.

△AI와 딥테크를 중심으로 한 산업 전환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국가 차원의 총력 대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술 불확실성이 크고 상용화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민간 자본이 쉽게 들어오기 어려운 영역이다. 모태펀드 같은 정책자금이 먼저 들어가 초기 위험을 분담하고 민간 자금이 자연스럽게 뒤따라올 수 있도록 투자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첨단산업 같은 국가전략기술 투자는 단기 수익보다 산업 생태계를 얼마나 두텁게 만들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한두 개 기업의 성공이 아니라 관련 기술과 인력, 후속 기업이 연쇄적으로 등장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모태펀드 기간 연장과 구조 개편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모태펀드는 2005년 출범 이후 벤처 생태계의 마중물 역할을 해왔지만 2035년 종료가 예정돼 있어 장기 투자의 지속성이 우려됐다. 다행히 지난해 ‘벤처 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 등의 개정으로 10년 단위로 연장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전략 기술과 장기 회수가 필요한 산업에 안정적인 자본 공급이 가능해졌다. 초기 투자에서 스케일업·회수로 이어지는 전 주기적 자본 사다리 설계가 가능해진 것이다. 존속 기간이 연장된 만큼 단기 성과에 흔들리지 않고 벤처·스타트업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벤처 투자만큼 회수 시장 활성화도 중요한데.

△벤처·스타트업 생태계가 선순환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국내 회수 시장은 기업공개(IPO)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 최근에는 이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인수합병(M&A)이나 세컨더리 같은 다양한 회수 경로가 함께 작동해야 투자 자금이 다시 시장으로 돌아오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IPO를 한다고 성장이 끝나는 게 아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성장이 시작된다. 계속 성장시켜주려면 기관들이 더 많이 시장에 들어와야 한다. 일단 IPO가 잘돼야 회수도 잘되고 다시 재투자하는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초기에서 중기 투자로 넘어갈 때 세컨더리 투자가 필요한데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규모를 지난해보다 늘릴 예정이다.

이대희 한국벤처투자 대표가 2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벤처 생태계 선순환의 필요성과 모태펀드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이대희 한국벤처투자 대표가 2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벤처 생태계 선순환의 필요성과 모태펀드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지역 벤처 투자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던데.

△수도권과 지역의 벤처 생태계는 완전히 다르다. 지방 인구소멸 문제 등 지역 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대기업 이전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결국 지역에 맞는 벤처·스타트업이 계속 나와줘야 한다. 모태펀드를 마중물로 지방정부·금융기관·대학 등 지역 혁신 자금을 모아 ‘지역성장펀드’를 계속 조성해나갈 계획이다. 모태펀드가 60%, 나머지 40%는 지역에서 출자하는 방식이다. 전국 5개 초광역권과 3개 특별자치도, 이른바 ‘5극 3특’ 및 수도권을 제외한 초광역권에 우선 조성하고 비수도권 14개 시도에 5년 이내 최소 1개 이상 조성하는 게 목표다. 지역성장펀드에 대한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우선손실충당 강화 및 풋옵션 신설, 시장형 공기업에 인센티브 확대 등을 지원한다. 5극 3특 권역에 지역사무소를 추가 개소해 뒷받침할 생각이다.

-뉴욕·실리콘밸리·싱가포르 등 해외 거점은 어떻게 운영되나.

△해외 거점은 단순한 현지 사무실이 아니라 국내 벤처·스타트업에 글로벌 시장과 자본을 실제로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벤처캠퍼스(SVC)’는 기존의 K스타트업센터·글로벌비즈니스센터 등 분산된 거점을 통합해 원스톱 지원 체계로 만들었다. 매년 200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국내 벤처·스타트업이 글로벌 투자자·업계와 만날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싱가포르에는 가변자본기업(Variable Capital Company) 기반 펀드를 조성해 현지 대형 펀드의 참여를 촉진하고 국내 벤처·스타트업의 해외 네트워크를 더욱 강화해나갈 것이다.

-첫 관료 출신 대표다. 민간 출신 대표와 차별화된 점이 있다면.

△정책과 시장을 동시에 이해하고 연결해온 경험일 것이다. 벤처 투자는 제도와 시장이 따로 움직일 수 없는 영역이다. 정책이 시장에서 실제 투자와 기업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고 실행 가능한 구조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공에서의 경험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신뢰를 쌓는 과정이었다. 벤처·스타트업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와 민간 운용사, 투자자, 기업이 각각의 역할을 존중하면서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조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젊은 벤처·스타트업 창업가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

△벤처·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업에 뛰어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자금이나 제도도 중요하지만 결국 “한번 도전해볼 수 있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어야 창업이 시작된다고 본다. 기업가는 자신의 삶을 걸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다. 끝까지 문제를 정의하고 고객과 시장을 검증하고 그 과정에서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 정책 자본이 해야 할 일은 이런 태도가 꺾이지 않도록 연결망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창업 생태계는 기업가가 도전할 수 있는 환경과 이를 함께 지탱해주는 투자자가 공존하는 구조다.

이대희 한국벤처투자 대표가 2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기관을 소개하고 있다.  조태형기자
이대희 한국벤처투자 대표가 2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기관을 소개하고 있다. 조태형기자

◇He is…

1970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부산 충렬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버밍엄대에서 국제금융 및 유럽학 석사를 받았다. 행정고시 37회로 공직에 입문했고 기획재정부 경제구조개혁국장 등을 거쳤다. 중소벤처기업부로 옮겨 소상공인정책실장·중소기업정책실장·기획조정실장을 지내며 소상공인·중소기업 지원 정책과 혁신 벤처 육성 정책을 총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검토회의(EDRC) 운영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관료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2025년 5월부터 한국벤처투자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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