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정조준…‘협상기술’ 다시 걸어온 트럼프
<92>15→25%도돌이표 트럼프 관세
“한국 입법부, 합의를 승인하지 않았다”
발언 하루 만에…“한국과 해결책 찾을 것”
진의 파악 나선 정부…협상 파트너 별 방미
野 “관세 참사” 총공세· 與 “비준사항 아냐”
작년 11월 발의 후 심사도 없이 “서로 네 탓”
李 “국회가 너무 느려서 일을 할 수가 없다”
입력2026-01-28 11:00
수정2026-01-29 08:2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올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한 줄에 한국의 관세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11월 경주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이후 관세협상이 타결됐다는 안도감이 컸던 탓이었는지 정부도 국회도 트럼프의 ‘협상의 기술’을 잊고 있었습니다. 숫자를 던져 공포를 만들고 상대를 협상 테이블로 다시 불러내는 트럼프의 협상기술이 다시 발휘됐습니다.
‘대미투자특별법’ 국회 통과 지연에 관세원복 ‘으름장’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SNS 트루스소셜에 게시한 글에서 “한국 입법부가 한국과 미국과의 합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이에 따라 자동차, 목재, 의약품 및 기타 모든 상호관세(국가별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난 2025년 7월 30일에 양국을 위한 위대한 합의를 했으며, 내가 2025년 10월 29일 한국에 있을 때 그런 조건을 재확인했다. 왜 한국 입법부는 합의를 승인하지 않았는가”라고 적었습니다. 한국의 대미 투자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대미투자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은 상태를 문제 삼은 것으로 보입니다.
청와대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SNS게시 직후 언론공지를 통해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통보나 세부내용에 대한 설명은 아직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강유정 대변인은 또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대미 통상 현안 회의 관련 서면 브리핑을 통해 “관세 인상은 미국 연방 관보 게재 등 행정 조치가 있어야 발효된다”면서 “정부는 관세 합의 이행 의지를 미국 측에 전달하는 한편 차분히 대응해나갈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SNS에 올린 관세 복원 게시글이 곧바로 관세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이처럼 공식적으로는 침착한 대응 기조를 유지했지만 방산 외교 일정으로 캐나다를 방문 중이던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미국에 급파하는 등 안팎으로 긴장감이 감지됐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의중과 협상 여지를 조기에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이 반영된 조치로 풀이됩니다.
산업장관·통상교섭본부장 美급파
다음날(27일, 현지시간)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관세를 낮춘 반면, 한국은 약속을 이행하는 데 전혀 진전(no progress)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아이오와주 현지 일정 중 이에 대한 질문에 “한국과 함께 해결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변화무쌍한 전략 구사를 해왔던 방식 그대로 하루 만에 톤이 낮아진 셈입니다.
트럼프 진의 파악 나선 정부...美공화당 ‘쿠팡’언급
트럼프 대통령의 진의는 무엇일까요. 당장 다양한 분석과 진단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한국의 빠른 대미투자를 압박하기 위한 조치라는 평가가 우선 나오고 있습니다. 선거 경합주에 한국과 일본의 투자금으로 공장을 건설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식의 선거운동을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입니다.
다른 한편 한국 국회가 최근 통과시킨 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국회에서 발의된 온라인 플랫폼 규제에 대해 불만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지난 23일에는 J.D. 밴스 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해 묻기도 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디지털 규제와 함께 반도체 관세 부과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시각입니다. 실제 미국 공화당은 자국 기업인 쿠팡을 ‘부당하게 겨냥’한 것이 관세 인상의 원인이라고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까지 트럼프 SNS 분석·진단
일각에서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전날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과 함께 캐나다 방산 특사단에 합류한 것을 경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습니다. 최대 60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 ‘캐나다 초계 잠수함 프로젝트(CPSP)’수주를 위해 민관협력 과정에서 현대차가 캐나다에 북미 최초의 수소차 설립 카드를 가시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중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캐나다와 관계가 악화한 마당에 한국 수소차 공장을 캐나다에 빼앗길 수 없어 한국을 압박한 것이라는 접근입니다.
원인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번 일이 진작에 대비할 수 있었던 일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적한대로 국회에서 관련 법안만 통과시켰으면 될 일이었는데 이런 사단이 나도록 한국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요.
상황이 발생한 27일 국회의 여야 공방을 보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국회 비준 ‘패싱’이 불러온 관세 참사”라고 규정하고 공세에 나섰고, 더불어민주당은 “기본적으로 국회 비준 대상이 아니다”며 “비준이 안 돼서가 아니라 입법 처리가 되지 않았다는 점을 정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서로 네 탓’인데 지난해 11월 발의된 대미투자특별법은 이후 상임위 심의가 단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국민들 눈에는 여야 모두 ‘니들 탓’으로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민주당은 <한미합의의 내용은 법안 발의였고 통과시점은 없었다. 국회 재경위에서는 12월엔 조세심의, 1월엔 인사청문회로 개별 법안 심의를 할 여유가 없었다. 향후 정상적 절차에 따라 심의가 이뤄질 것(정태호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민주당 간사)>이라고 설명합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350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문제는 반드시 국회의 검증과 동의를 거쳐야 한다는 국민의힘의 요구를 ‘발목잡기’로 매도해 왔다. 국민께 숨기고 있는 협의 과정이나 내용이 있는지 지금이라도 투명하게 공개하라(국회 외교통일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 성명)>맞받아 치고 있습니다.
與野 “서로 네 탓”에 속타는 기업 ·속터지는 국민
두 입장 모두 그럴듯하지만 기업은 속이 타들어가고, 국민은 속이 터집니다. 국민의힘 주장대로 비준을 하게 되면 3500억 달러는 나라 간 조약에 준하는 위상을 차지해 미국에 모두 투자해야 합니다. 미국 대법원이 ‘트럼프 관세’ 무효 선고를 내더라도 말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트럼프가 대법원 선고 전에 한국을 압박해 합의를 뒤집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외신보도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비준을 주장한다는 건 오로지 당리당략을 앞세운 국익은 없는 정치공세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민주당이 “상대국은 비준하지 않고 행정명령으로 했는데 한국만 비준하면 우리나라만 구속되는 꼴이 된다”고 강조하는 배경입니다. 재정적 부담에 대한 국회 검증은 법안 심의 과정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반대로 민주당도 속이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연 200억 달러 재원 마련과 고환율 탓에 법안 통과에 지연작전을 벌였다는 의구심이 쌓이고 있습니다. 한 여당 의원은 “한미 간 팩트시트 상으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달의 1일(지난해 11월1일)로 소급해 미국이 관세를 인하하기로 한 만큼 특별법 발의가 중요했다”고 전했습니다. 법안 발의 이후에는 국회 통과를 서두르기 보다 시기 조율에 나선 셈입니다. 국익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유효할 수도 있지만 미국 동향을 병행하지 않은 것은 실책입니다.
李 대통령 “분열과 반목에 국익 지킬 수 없다”
이런 국회 상황에 이재명 대통령은 답답함을 드러낸 것일까요. 27일 당일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지금 국회가 너무 느려서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태”라며 여야를 싸잡아 비판했습니다. 임광현 국세청장과 체납 국세 외 수입의 신속한 징수 방안을 강구하라는 지시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지만 꽉 막힌 국회 상황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 대통령은 “문제는 지금 우리가 (정부 출범)8개월이 다 돼 가는데 소위 정부의 기본적인 정책 방침에 대한 입법조차도 20%밖에 안 된다는 것 아니냐”며 “그걸 계속 기다릴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번 사태를 예견이라도 하듯 이 대통령은 일찌감치 외교 문제의 초당적 협력도 강조했었습니다. 지난 1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지금은 국내 정치의 역할도 더 없이 막중하다”며 “분열과 반목한다면 외풍에 맞서 국익을 지킬 수 없고, 외교 성과조차 물거품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종종 정치와 행정을 구분지어 지시와 설득을 해왔습니다. 이날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의 영역인 국회의 지연이 행정 뿐만 아니라 외교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긴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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