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듣기

  • 글자 크기

    글자 크기 설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 기사 공유

  • 북마크

  • 다크모드

  • 프린트

네이버 채널구독

다음 채널구독

디지털 무역 장벽과 주권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정통망법 등 놓고 美와 충돌 불가피

디지털 규제, 정당성·비례성 면밀 검토

입법 취지 충분히 알려 마찰 줄여야

입력2026-01-31 07:40

지면 23면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25%로 인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관세율 회귀는 투자 이행 문제뿐 아니라 망 이용료, 온라인 플랫폼 규제 등 디지털 규제 집행에 대한 미국 측의 불만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해 한미 관세 협상에서는 미국의 상호관세 인하와 한국의 대미 투자 외에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 집행 과정에서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바 있다. 미국은 한국의 정보통신망법상 허위 조작 정보 규제 도입에 대해 표현의 자유 침해, 기술협력 훼손이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또 미국에 상장된 국내 e커머스 기업의 개인정보 유출 사안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전방위적인 조사를 벌이자 이를 ‘정치적 마녀사냥’에 빗대며 비판을 제기했다.

이처럼 한국이 디지털 주권을 행사하기 위한 규제 시도는 미국 측에서 디지털 무역장벽으로 문제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또 관세 인상 등 통상 압박의 배경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디지털 주권은 국가가 데이터와 플랫폼, 디지털 인프라 전반에 대해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정책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하지만 초국경성을 본질로 하는 디지털 환경에서는 기술과 자본을 앞세운 미국 플랫폼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지배력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이에 대응해 한국은 소비자와 산업 보호를 위한 디지털 규제를 도입하고 있으나 이 과정에서 미국과 통상·규범적 충돌도 불가피해지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디지털 규제가 정당한 주권 행사이며 국내외 기업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비차별 규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 맥락 속에서 자국 테크 기업에 부담될 수 있는 외국의 규제 입법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용자 보호, 공정 경쟁, 산업 육성이라는 목표상 디지털 규제를 쉽게 후퇴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갈등은 이제 민주주의 가치나 규범 차원을 넘어 국가 이익을 둘러싼 힘의 경쟁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시장 자율과 사후 규제를 중시하는 미국의 법·규제 체계와 달리 한국이 유럽연합(EU)식 사전 규제를 계속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갈등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다 최근 국회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디지털 규제의 경우 유사 입법례가 없는 것은 물론 정당성·비례성에 대한 검토가 충분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 결국 한국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규제의 명분과 협상력 모두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

향후 디지털 규제를 도입함에 있어 한국 입장에서의 정책적 필요성뿐만 아니라 정당성·비례성 등 측면에서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아울러 입법 초기 단계부터 한미 간 협력 채널을 가동해 입법 취지와 적용 대상을 충분히 설명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와 마찰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다음
이전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