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생존 문제 … ‘착한 정년’은 없다
■신성환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정년 늘어나면 임금·직무·평가 바뀌어
준비 없는 변화, 노사 모두 혼란만 가중
입력2026-02-01 18:55
수정2026-02-01 22:09
지면 23면
노동 현장에서 ‘정년 연장’은 더 이상 노인 복지 문제가 아니다. 기업에게는 인건비와 생산성, 조직 활력이 걸린 경영 과제이자 근로자에게는 “언제까지, 어떤 조건으로 일할 수 있는가”를 묻는 치열한 생존의 문제다. 생산 가능 인구 감소가 현실이 된 2026년, 정년 논의는 단순히 선한 취지의 선언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현장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정년만 연장하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이다. 우리는 이미 정년 60세 의무화와 관련해 철저히 준비되지 못한 정년 연장이 어떠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지 목격했다. 당시 많은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비용 충격을 줄이려 했지만, 합리적 직무 조정이나 보상 기준 없이 나이만을 이유로 임금을 깎은 경우 여전히 그 정당성을 두고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정년 숫자가 바뀌는 순간, 임금(호봉), 직무(배치), 평가(성과관리)라는 인사관리의 세 축이 동시에 흔들린다. 호봉제는 그대로 둔 채 정년만 늘리면 과도한 인건비 압박이 생기고, 이를 막으려 억지로 보직을 내리면 “일은 그대로인데 월급만 깎였다”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법무와 인사의 입장에서 볼 때, 정년 연장 자체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이 ‘기준의 부재’다. “왜 급여가 깎였는가”라는 질문에 회사가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그 끝은 필연적으로 법적 분쟁이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초고령 사회를 맞이한 일본이 제도 개편으로 ‘고용 확보’에는 성공했으나, 질 낮은 노일 일자리를 양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도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시혜적 고용이 아니라 “전략적 계속고용”이다. 시니어가 조직에 남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보유한, 어떤 형태로의 역량이든지 기업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정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직무의 가치를 납득 가능한 기준으로 구분해야 한다. 둘째, 평가와 보상을 단순하고 명확하게 연결해야 한다. 셋째, 평가 결과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논의의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누가, 어떤 일을, 얼마에 하는가”를 투명하게 설명할 수 있고, 불신에 따른 소송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를 통해 청년 세대와의 갈등도 줄일 수 있을 것이며, 세대 간 양보가 아닌 각자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냉철한 ‘비즈니스 파트너십’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년 연장 논의는 ‘누가 더 좋은 말을 하느냐’의 경쟁이 아니라, ‘누가 더 정확한 기준을 설계하느냐’의 경쟁으로 발전해야 한다. 준비 없는 변화는 노사 모두에게 혼란만 가중시킨다. 요구되는 것은 기업의 명확한 성과 체계, 근로자의 유연해진 임금 구조에 대한 합의, 그리고 정부의 실질적인 전환기 지원이다. 이제 감상을 걷어내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시점이다. 냉철한 이해타산 끝에 도출된 합의만이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초고령화 사회가 현실화된 대한민국에서 인적 자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대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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