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이름 변경은 선거전략이 될 수 있을까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통령 교체 때마다 당명 변경 반복
단기적 득표 효과…지속적 한계 뚜렷
국힘, 쇄신 위해 본질가치 우선해야
입력2026-02-02 05:00
지면 29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정당의 이름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의 정당 이름은 민주화 이후 유독 자주 바뀌어 왔다. 현재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10년 전, 20년 전 어떤 이름이었는지를 정확히 떠올리지 못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무지나 무관심 때문이라기보다 정당 스스로 이름을 지나치게 빈번히 바꿔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정치학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는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임기 종료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자조 섞인 말이 회자되곤 했다.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은 이후 신한국당을 창당했고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 역시 집권 이후 새천년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노무현의 열린우리당, 이명박의 한나라당, 박근혜의 새누리당 또한 전임 대통령의 임기 종료와 함께 각기 다른 이유를 내세우며 당명을 바꾸거나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
다만 정당 명칭 변경이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유럽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정당의 이름 변경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비교 정당 연구에 따르면 1945년 이후 서구 민주국가에서 활동한 정당 가운데 4분의 1 이상이 최소 한 차례 이상 당명을 변경했으며 세 번의 선거 중 한 번꼴로 새로운 이름의 정당이 투표용지에 등장해 왔다. 이는 정당 명칭 변경이 특정 국가의 정치 문화나 일시적 혼란의 산물이 아니라 민주주의 경쟁 속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돼온 보편적인 선거 전략임을 보여준다.
서구 민주주의 정당들을 포괄적으로 분석한 연구들은 정당이 오랫동안 사용해 온 이름일수록 유권자에게 축적된 브랜드 자산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직전 선거에서의 중대한 패배, 혹은 유권자 충성도가 낮고 변동성이 큰 정당 체계에서는 이러한 관성이 급격히 약화된다. 이 경우 당명 변경은 단순한 외형 조정이 아니라 부정적 이미지를 차단하고 정치적 생존 가능성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리브랜딩’이 실제로 선거에서 효과가 있을까. 비교 연구들에 따르면 정당명이나 로고를 바꾸는 외형적 리브랜딩은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의 재평가를 이끌어내며 득표율을 끌어올리는 데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이념적 위치 조정이나 정책 노선 수정과 같은 정책적 리브랜딩은 득표율 상승과 뚜렷한 연관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유권자들은 복잡하고 인지 비용이 높은 정책 변화보다 당명이나 상징색처럼 즉각적으로 인식 가능한 시각적 신호를 변화와 쇄신의 증거로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국민의힘이 새로운 당명 공모에 나선 것도 전략적으로만 보면 이해 가능한 선택일 수 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10년 동안 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세 차례나 이름을 바꿔왔다. 보수 정당이 배출한 두 명의 대통령이 모두 탄핵이라는 불명예 속에 물러난 상황에서 새 출발을 시도하려는 계산이 완전히 비합리적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잦은 당명 변경은 동시에 한국 대표 보수정당의 제도적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국민의힘이 내세우고자 하는 보수의 철학적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이번 당명 공모에서 ‘국민’ ‘자유’ ‘공화’와 같은 키워드가 언급되고 있지만 지난 여러 차례의 당명 변경 과정에서 안정적으로 지속된 보수의 핵심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는 쉽게 떠올리기 어렵다. 이는 이번 당명 변경을 추진하는 국민의힘이 특히 뼈아프게 되새겨야 할 지점이다.
변화와 쇄신을 시도하는 정당에 정책 노선을 바꾸는 것보다 당명을 바꾸는 것이 더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선거 전략일 수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리 효과 좋은 약도 지나치게 자주 쓰면 내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번 당명 변경이 부디 국민의힘의 마지막 처방이 되기를 바란다. 정당의 이름을 바꾸는 정치는 쉽다. 그러나 더 어려운 일은 그 이름 아래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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