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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성큼 다가온 ‘호모 라보란스’의 종말

■ AI 시대, 다시쓰는 노동+경제학

아마존 등 빅테크 수만명 감원

생산직도 조만간 AI·로봇에 밀려

2030년께는 인건비 역전 전망

경제구조 전반 재설계 나서야

입력2026-02-01 17:55

수정2026-02-02 08:12

지면 1면

호모 라보란스 AI 생성 이미지
호모 라보란스 AI 생성 이미지

메타가 가상현실 사업 조직에서 15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밝히면서 메타 내부 직원들의 동요가 커지고 있다. 자신들이 개발에 관여한 인공지능(AI) 기술이 생각보다 더 빨리 발전하면서 오히려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부딪힌 메타 직원들은 속으로는 불만을 제기하면서도 어떻게든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달 30일 저녁(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에 있는 메타 본사. 이날은 금요일 퇴근 시간임에도 주차장은 차들로 가득했다. 옆자리 동료가 예고 없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직원들이 자발적 야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드물게 시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직원들도 승강장에 앉아 노트북으로 업무에 몰두했다.

AI 경쟁에서 초반에 실기한 메타가 사명에 있던 메타버스(가상현실) 사업을 축소하고 AI에 집중하겠다고 나서면서 촉망받던 최고급 엔지니어들이 구조조정 1순위에 올랐다. 메타 본사 앞에서 만난 인도 출신의 한 연구원은 “오픈AI·앤스로픽과의 경쟁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서도 “이번 결정으로 내부에 긴장감이 고조돼 있다”고 전했다.

AI가 급속히 고도화되면서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 시대가 더 빨리 저물 수 있다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이미 정보기술(IT) 업계는 물론 공장 생산직이나 운수업자 등은 AI와 휴머노이드에 밀려 일자리에서 빠르게 퇴출당하고 있다. 앞으로 사람과 로봇이 일자리를 놓고 다투는 갈등 상황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노동하는 인간이 사라지게 되면 그들의 수입으로 지탱했던 한 나라의 사회보장제도와 조세제도 등 국가 시스템 전반이 바뀌어야 한다. 특히 노동에 따른 경제적 부가가치가 사실상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돼 발전한 현대 주류 경제학의 상당 부분이 재설계돼야 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기승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존재하는 일자리들이 피지컬 AI의 등장으로 어느 순간 사라질 수 있다”며 “노동소득에 기반한 각종 세제 정책 외에 경제구조 전반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인간 노동만이 가치를 만드나”…도전받는 애덤 스미스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6’. 지멘스는 제조업 공장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면서 이목을 끌었다. 독일의 에를랑겐 공장에 ‘에이전틱 인공지능(Agentic AI)’을 도입해 설계·조달·물류·생산·품질 등 전 과정을 인간 대신 맡게 할 계획이다. 이는 2019년 폐쇄했던 아디다스의 스마트 팩토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아디다스 공장의 AI는 정해진 동작만 반복하는 로봇을 연결하는 걸음마 단계였다. 반면 에를랑겐 공장 AI는 스스로 판단하고 사람처럼 일할 수 있는 로봇을 유기적으로 통제한다. 에를랑겐 공장이 계획대로 움직여만 준다면 기존 공장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공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소수의 관리·감독자만 존재하고 노동자는 없는 ‘다크 팩토리’의 문이 열리는 셈이다.

‘다크 팩토리’를 250여 년 전 ‘국부론’을 써 자본주의 경제학의 기초를 닦았던 애덤 스미스가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스미스가 본 최첨단 기계는 고작 방직기나 증기기관이 전부였을 테니 사람이 없이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본다면 아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두려움은 그가 제시하고 뒤이어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받아들였던 ‘모든 부(wealth)의 근원은 노동’이라는 ‘노동가치론’이 “잘못됐을 수 있다”고 고백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지금까지 기술이 발전하고 공장에 더욱 뛰어난 기계들이 투입됐어도 노동가치론의 기본 명제가 완전히 부정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휴머노이드가 공장에 투입되고 생산 주체가 인간에서 로봇으로 옮겨가 인간의 노동 투입이 ‘제로’에 수렴해도 상품 가격이 유지될 때 그 가격을 무엇으로 설명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노동가치론뿐만 아니다. 한계생산성 이론도 흔들릴 수 있다. 이 이론은 ‘노동과 자본은 각각 추가로 투입했을 때 늘어나는 생산(한계기여)만큼 보상받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공장에서 운영하는 AI 시스템 성과는 개인 한 명의 역량으로 쪼개기 어렵다. 데이터, 알고리즘, 그래픽처리장치(GPU), 클라우드 같은 컴퓨팅 파워, 현장 적용과 운영이 한 덩어리로 결합돼야 한다. 효율의 원천이 ‘개인의 추가 기여’가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결합’에서 나오면 ‘기여만큼 보상’이라는 전통 공식은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워진다.

AI시대서 도전받는 경제학 이론
AI시대서 도전받는 경제학 이론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는 국가별 기회비용 차이가 교역을 낳는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저개발 국가에서는 노동집약적, 선진국에서는 서비스나 지식산업들이 발달해 교역을 이어간다. 하지만 휴머노이드와 AI 시대의 경쟁력은 천연자원이나 인건비보다 구글·엔비디아 같은 초거대 AI 기업 생태계를 보유했는지에 좌우될 가능성이 커진다. 오히려 이런 생태계를 보유한 국가에서 생산이 더 많이 일어나면서 국가 간 양극화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공급이 아니라 결국 수요’라는 케인스식 유효수요 이론은 휴머노이드로 생산능력은 급팽창할 수 있지만 인간의 임금 소득이 줄면 소비가 따라오지 못해 ‘수요 부족’이 만성화될 수 있다는 지적에 부딪힌다. ‘실업이 낮아지면 임금·물가가 오르고, 실업이 높아지면 내려간다’는 필립스 곡선도 이제는 평평해질 수 있다. 휴머노이드가 노동 공급을 사실상 늘리면 임금 상승 압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물가·임금·고용의 연결고리가 달라지면 중앙은행과 정부의 정책 처방도 재설계가 불가피하다.

또 ‘혁신이 낡은 산업을 무너뜨리며 새 산업을 만든다’는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나 교육은 생산성 향상(기술 축적)과 더 높은 임금으로 연결되는 경로라는 인적자본 이론도 수정의 대상이 된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통경제학은 규모가 커지면 한계생산성이 저하돼 시장에서 교환가치가 발생한다는 것”이라며 “AI 시대는 승자(구글·엔비디아 등)가 공급을 하면서 독점적 1등도 된다. 이런 상황은 전통경제학 논리를 모두 파괴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다크 팩토리를 만드려는 움직임은 ‘공장이 얼마나 똑똑해질까’의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경제 질서를 논의하기도 전에 노동시장은 먼저 흔들릴 수 있는 만큼 새로운 원리를 함께 세워야 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조 교수는 “자본주의가 건강하려면 사회안전망과 시장경제가 함께 보장돼야 한다”며 “새로운 AI 자본주의가 어떻게 발전할지, 호모사피엔스는 이 자본주의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청사진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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