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국가·국민 떼놓고 보는 객관화 필요”
강창일 전 주일대사
맹목적 친일·감정적 반일 접근 안돼
역사 과오-경제·안보협력 분리해야
정치계 일본통 ‘한일관계 80년사’ 집필
양국 권력·정파따른 외교 ‘부침’ 담아
갈등 해결 위한 위원회 설치 제안도
일본어판 계획, 관계개선 도움됐으면
입력2026-02-03 14:00
“한·일 관계는 국가와 사람을 분리해서 보는 시각이 중요합니다. 맹목적 친일주의와 감정적 반일주의가 아닌 이성적으로 일본을 이해하면서 대일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강창일 전 주일대사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한·일 관계 개선의 해법으로 역사적 과오에 대한 관점과 경제·안보 협력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은 우월의식, 우리는 차별의식을 갖고 감정적으로 대처할 게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객관화가 필요하다”며 “일본 정치권의 잘못된 결정을 일본인 전부의 책임으로 돌려 ‘나쁜 나라’로 일체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주일대사를 역임한 강 전 대사는 4선 국회의원으로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낸 정치계의 대표적인 ‘일본통’이다. 그는 도쿄대학에서 조선 침략사와 일본 우익의 사상인 대아시아주의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역사학자이기도 하다. 강 전 대사는 최근 집필한 ‘한·일 관계 80년사’와 관련 “지난 2022년부터 동국대에서 강의한 근현대 한·일 관계사를 정리했다”며 “마침 광복 80주년과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겹치는 해이기도 해서 그간 연구와 정치인, 외교관으로서의 현장 경험을 더 해 교양서 성격의 비망록을 내게 됐다”고 소개했다.
책은 광복 이후 한국의 이승만 정권부터 윤석열 정권까지, 일본의 시데하라 기주로 내각부터 이시바 시게루 내각까지 해방 이후 80년에 걸친 양국 관계와 지도자들의 정책을 시대별로 설명하고 있다. 한일 관계를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아니라 한국의 대통령 중심제 권력 변화와 일본의 내각책임제 정파 변화를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대표적으로 전두환·노태우 정권기를 ‘한국 군부정권과 일본 보수정권의 유착’으로, 박근혜·이명박 정권기를 ‘아베 총리의 반한정책과 한국의 널뛰기 외교’라고 평가한 점 등이다.
그는 문재인 정권 시절을 ‘문재인의 원칙론과 아베의 반한정책 간 충돌’이라고 표현했다. 당시 강제동원에 대한 배·보상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로 양국 관계는 급격히 얼어붙기 시작했고, 일본은 수출 규제로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일본 우익은 일본대사로 임명된 강 전 대사를 박사 학위 논문 등을 근거로 ‘반일주의자’라는 낙인 찍었고, 국내 정치권에서는 부임 이후 9개월간 외무상과 총리를 만나지 않은 것을 두고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는 “의원 시절 아베 전 총리와는 10여 차례 만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지만 반한(反韓) 정책을 펴면서 소원해져 퇴임 때까지 끝내 만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이재명 정부의 한일 관계에 대해선 긍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강 전 대사는 “지난해 한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일본 정치권이 이재명 후보를 ‘반일주의자’로 평가했는데 이는 잘못된 분석이라는 의견을 전한 바 있다”며 “이재명 정부는 실용외교, 국익외교를 펼쳐 일본과 관계회복에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 전 대사는 정부에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뛰어넘을 선언을 제안하며 “경제 협력과 역사교과서 문제 해결, 위안부 재단 설립 등 현안을 논의할 위원회를 설치해 양국이 갈등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베 전 총리의 ‘정치적 후계자’로 평가되는 다카이치 내각에 대해서는 “한국이 중·일 관계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만큼 일본 정부가 한국의 손을 잡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간협력기구 한일포럼 한국 측 회장을 맡은 강 전 대사는 양국 젊은이들을 통한 양국 관계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우리 기성세대는 일본을 침략 국가라는 부정적 의식이 강하지만 젊은 세대는 일본을 친절하고 청결한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양국 젊은 세대 간의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 우호적 관계로 발전하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강 전 대사는 올해 하반기 중으로 ‘한·일 관계 80년사’ 일본어판 출간을 계획 중이다. 그는 “일본 역사교과서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며 “일본인 교수들에게 공동번역을 맡겼고, 양국 관계 개선의 해법이 도출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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