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0조 쏟는 생산적 금융, 정부 예산의 1.7배...산업 전문가 없인 나눠먹기 전락
리빌딩 파이낸스 2026-<하>심사능력 부족한 韓
은행 심사 인력 전문성 부족한데
옥석가리기보단 금액 규모만 강조
특정 기업에만 자금 쏠릴 가능성
연봉·처우개선 등 파격대우 통해
대기업·IT 전문인력 채용 늘려야
입력2026-02-02 17:58
수정2026-02-02 20:37
지면 9면
KB국민과 신한 같은 5대 금융그룹과 한국산업은행·IBK기업은행 등 국책 금융기관이 향후 5년간 공급하겠다고 밝힌 생산적 금융 지원액은 1240조 원이다. 올해 정부가 운용하는 예산안(728조 원)보다 1.7배나 많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은 천문학적인 투자 자금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시장에서는 지금의 생산적 금융 논의가 지나치게 지원 액수 같은 수치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는 분석이 많다. A 은행의 한 여신 담당 임원은 2일 “은행마다 5년간 100조 원씩 한다고 하는데 그게 다 순증이 아니라 신규 취급 기준”이라며 “원래 매년 기업금융 몫으로 하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첨단산업 지원을 위한 전문가와 심사 인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생산적 금융 명목으로 집행되는 자금이 단순 나눠 먹기로 전락하거나 특정 기업에만 집중적으로 쏠리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그동안의 위험 회피 관행 때문에 산업 분야 전문가들이 은행에 많이 없다”며 “은행들이 산업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만 해도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은 반도체 산업 전문가를 채용해 조직을 만들었고 미즈호은행은 반도체 검사 장비 기업에 출자할 당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키옥시아 관계자로부터 기술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신한은행이 지난해 첨단 소재 부품과 신재생에너지 분야 전문가를 뽑았지만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이를 고려하면 연봉과 처우에서 파격적인 대우를 통해 대기업과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인력을 뽑아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B 은행의 한 여신 담당 임원은 “기존 방식으로는 단기간에 전문인력을 채용하기 쉽지 않다”며 “기존 인력을 양성하기에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짚었다.
이 때문에 생산적 금융에 조급함을 보이면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금융권에 기업금융 심사 역량과 신용평가를 정비할 시간을 줘야 한다”며 “건전성이 손상되면 안 되는 은행에 생산적 금융을 조급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안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로서는 투자처가 한정돼 있는 한계도 존재한다. C 은행 여신 담당 임원은 “유망하면서도 건전성 수준이 좋은 벤처기업은 상당히 한정돼 있다”며 “이 상태에서 돈이 많이 돌면 일부 벤처 업체들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몸값)만 높아져 나중에 골치가 아플 수 있다”고 전했다. D 은행의 한 여신 담당 임원도 “산업은행 내에서도 원래 기업금융을 담당하던 파트가 있는데 여기에 별도로 국민성장펀드를 맡는 조직이 새로 생겼다”며 “같은 둥지 안에서 같은 시장을 두고 경합 관계에 놓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생산적 금융을 강화하는 기조에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있다. E 은행 여신 담당 임원은 “국민성장펀드 1호 사업으로 선정된 신안우이 해상풍력발전 사업도 대규모 프로젝트”라며 “생산적 금융 속에서 중기가 소외되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325조 2849억 원으로 1년 전보다 0.5% 줄었다.
은행권의 규제를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앞서 금융 당국은 비상장 기업에 3년 이상 투자 시 위험가중치(RW)를 400%에서 250%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금융 당국에서는 시행 세칙 개정을 완료하지 못했다. F 은행 여신 담당 임원은 “여전히 단기 매매 목적으로 투자하거나 가격 변동성이 큰 벤처기업에 투자할 때는 RW를 400%로 책정한다”며 “그러나 여기서 단기 매매와 가격 변동성이 크다는 개념이 불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RW를 낮추려면 투자 시 3년 이상은 돈을 빼지 않겠다는 약정을 해야 하는데 은행 입장에서는 이 자체로도 부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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