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매파 워시? 제로 금리에도 찬성했었다
연준 이사 시절 금리 결정 분석
인플레 경고 등 매파적 발언했지만
실물경제 보호·시스템 안정 최우선
금융위기때 공격적 금리인하 동조
‘멘토’ 드러켄밀러 “상황 따라 결정”
입력2026-02-03 17:40
수정2026-02-05 15:17
지면 12면
트럼프의 ‘연준 장악’ 시나리오, 케빈 워시 지명의 진짜 의미 [이슈 스나이퍼]
케빈 워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후보자의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성향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가운데 그가 실물경기가 크게 타격을 입는 상황에서는 공격적인 금리 인하에 동조했다는 사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이번에도 시장 예상만큼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내다봤다.
2일(현지 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워시 후보자는 2006~2011년 연준 이사로 재직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진 시기 파격적인 금리 인하에 대다수 찬성했다. 워시 이사가 5년 동안 공식적으로 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구체적으로 워시 후보자는 2007년 9~12월 연준이 단 세 번의 회의 만에 기준금리를 5.25%에서 4.25%로 내리는 동안에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워시 후보자는 2008년 1월 연준이 긴급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추가로 내릴 때도 이견 없이 동참했다. 또 연준이 4월 기준금리를 2.00%까지 내릴 때도, 같은 해 12월 0~0.25%라는 역사적인 제로금리 시대를 열 때도 모두 반대표를 행사하지 않았다. 글로벌 경제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간 탓에 실물경제 보호와 금융 시스템 안정이라는 대의를 우선시한 결과다. 일각에서는 공화당 성향의 그가 민주당 정권 당시였던 연준의 의사 결정에 비판적이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워시 후보자는 다만 찬성하는 와중에도 매파적인 목소리는 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워시 후보자는 2006년 연준에 합류하자마자 첫 회의 때부터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을 즉각 경고했다. 또 기준금리가 2.00%까지 내려간 2008년 5월에도 지나치게 빠른 금리 인하가 인플레이션을 촉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워시 후보자는 2010년 11월 연준이 2차 양적완화(QE) 조치까지 결정할 때도 찬성표는 던졌지만 의견은 비판적이었다. 그는 연준의 양적완화 대신 민간은행 자본 규제를 풀어 대출을 늘리고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을 지지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워시 후보자와 스탠리 드러켄밀러 간 긴밀한 관계에도 월가가 안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드러켄밀러는 1988~2000년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를 운용해 막대한 이익을 거둔 전설적인 투자자로 연방정부의 과도한 재정적자와 부채를 비판해왔다. 워시는 2011년 연준 이사직에서 물러난 직후 10년 간 드러켄밀러의 개인 자산 운용에 참여했다. 드러켄밀러는 지난달 30일 워시가 의장에 지명된 직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나는 그가 상황에 따라 두 가지 방향 모두를 취하는 것을 봤다”고 호평했다.
초반 그의 매파적 성향에 주목했던 시장도 점차 그가 예상보다 과감한 금리 인하를 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3일 블룸버그는 스티븐 메이저 브로커트래디션두바이 자문역을 인용해 “현재로서는 올해 두 번의 금리 인하가 예상되고 있지만 우리는 네 번 또는 다섯 번의 인하를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드러켄밀러는 듀케인패밀리오피스를 통해 쿠팡의 미국 모회사 쿠팡Inc에도 초기 투자자로 참여해 현재 지분 0.25%를 보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드러켄밀러는 워시 후보자가 2019년부터 쿠팡 사외이사를 맡는 데도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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