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빚어낸 거대한 조각, 그 속을 거닐다…울산시립미술관 ‘앤서니 맥콜’ 기획전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 앤서니 맥콜 개인전
빛과 안개로 만든 ‘솔리드 라이트’ 연작
입력2026-02-07 09:00
어둠 속에서 쏘아 올린 한 줄기 빛이 자욱한 안개를 만나면, 비물질인 빛은 마치 만져질 듯한 단단한 ‘조각’이 된다. 관람객은 스크린 앞에 앉아있는 대신, 빛이 만들어낸 원뿔과 파도 속을 유영하며 작품의 일부가 된다.
울산시립미술관은 2월 5일부터 오는 6월 14일까지 미술관 지하 1층 엑스알(XR)랩에서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앤서니 맥콜(Anthony McCall, 78)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빛을 물리적 조각처럼 다루는 그의 독보적인 연작 ‘솔리드 라이트(Solid Light)’를 집중 조명한다. 서울 북촌의 전시 공간 ‘푸투라서울’과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디지털 기술을 입고 진화한 맥콜의 예술 세계를 울산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자리다.
△스크린을 뚫고 나온 빛, 공간을 점령하다
1946년 영국에서 태어나 1970년대부터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앤서니 맥콜은 ‘확장된 시네마(Expanded Cinema)’의 선구자다. 그는 영화가 단순히 스크린에 투사되는 평면적 이미지가 아니라,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줄기 그 자체이자 공간을 점유하는 입체적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 왔다.
그의 작업 핵심은 ‘빛’과 ‘안개(Haze)’다. 캄캄한 공간에 얇은 안개를 채우고 프로젝터 빛을 투사하면, 빛이 통과하는 경로가 마치 고체(Solid)처럼 선명한 부피감을 드러낸다. 관람객은 이 빛의 벽을 손으로 훑거나, 빛이 만들어낸 공간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
△아날로그 감성을 디지털로…‘원뿔을 그리는 선 2.0’
이번 전시의 백미는 2000년대 이후 디지털 버전으로 재제작된 그의 대표작들이다.
특히 주목할 작품은 ‘원뿔을 그리는 선 2.0 (Line Describing a Cone 2.0)’(1973/2010)이다. 1973년 16㎜ 필름으로 처음 제작돼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던 원작을 디지털 기술로 재해석했다. 점 하나로 시작된 빛이 서서히 곡선을 그리다 마침내 완벽한 원뿔 모양의 입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관람객은 약 30분에 걸쳐 서서히 완성되는 빛의 조각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게 된다.
이와 함께 선보이는 ‘너와 나, 수평에서 (You & I, at the Horizontal)’(2005)와 ‘고통 II (Throes II)’(2011)는 빛의 움직임을 더욱 복합적으로 구현해 관람객의 감각을 자극한다. 시각적 경험뿐만 아니라 청각적 요소를 더한 오디오 설치 작업 ‘트래블링 웨이브 (Traveling Wave)’(1972/2013)도 함께 소개돼, 1970년대 초기 개념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맥콜의 예술적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관람객의 몸이 곧 작품의 일부”
맥콜의 작품에서 관람객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다. 관람객이 빛줄기를 가로지르거나 안개 속을 움직일 때 발생하는 공기의 흐름은 빛의 형상을 미세하게 일렁이게 만든다. 미술관 측은 “관람객의 신체적 개입이 있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이라며 “기존의 수동적인 미디어 아트 감상법을 탈피해, 온몸으로 매체를 경험하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울산시립미술관 입장권을 소지하면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상세 정보는 울산시립미술관 누리집에서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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