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수행처럼…사찰음식, 간결·청량함이 핵심”
사찰음식 연구가 정산스님
채수 사용 등 유행따라 변질 안타까워
양념 줄이고 ‘발우공양’ 가치 넣어야
60년 가까이 전국 사찰음식 채록·연구
‘본연의 맛 그대로’ 대중화엔 쓴소리
궁중음식처럼 무형문화재 지정됐으면
입력2026-02-07 07:40
지면 22면
“먹거리가 차고 넘치는 요즘 성인병 걱정없는 청량함, 그게 사찰음식 본연의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채소로만 만든 음식이라고 해봐야 샐러드 정도에 불과한 서양인들이 깜짝 놀라는 것도 그런 이유겠죠.”
사찰음식 연구가인 정산스님(사진)은 6일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사찰음식의 매력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정산스님은 사찰음식을 대중에 처음 알린 선구자로 알려졌다. 그는 1961년 부산 범어사에서 출가해 60년 가까이 사찰음식을 연구·복원해왔다. ‘사찰음식’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시절에 전국 25개 교구 본사를 돌면서 다양한 사찰음식을 채록했고, 논문과 여러 권의 책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정산스님은 “궁중음식, 전통음식과 달리 사찰음식은 레시피없이 구전으로만 전해왔다”며 “당시에는 ‘절밥’ 정도로 불렸지 사찰음식이라는 용어도 없었다. 수천 년 손으로 이어온 레시피가 사라질까 두려운 마음에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북한 사찰음식을 처음 소개한 것도 정산스님이다. 그는 2007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종교자대회에 참석차 북한 보현사를 방문해 북한 사찰음식을 배웠다. 그는 북한 사찰음식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싱겁다”고 평가했다. 양념을 최소화한 사찰음식의 원형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정산스님은 사찰음식이 계절식이면서도 주변 환경에 지배를 받는 게 특징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강원도 산나물, 제주도 버섯 등 바닷가 사찰은 산채와 해조류를 이용한 음식이 우수했고, 평야에 자리한 사찰은 밭나물 위주의 반찬이 발달했다”고 설명했다. 사찰음식은 어떤 음식보다도 간결하고 쉽게 조리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그는 “불교 경전에 수행자들은 원래 생식을 하도록 하고 있다”며 “생으로 먹어야 하지만 여의치 않으니 삶고 데쳐서 먹는 정도가 허용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찰음식은 어떤 음식보다도 간단히 조리하고, 양념도 최소화해야 한다”며 “더 중요한 건 사찰음식이 갖고 있는 철학적, 종교적 의미를 염두에 둬서 만드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정산스님이 강조하는 사찰음식의 핵심은 불교의 식사의식인 발우공양이다. 사찰음식을 이야기할 때 개별 메뉴나 조리법에 주목하기보다 불교 정신을 전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는 “수천 년 이어온 불교 식문화의 정점이 바로 발우공양”이라며 “사찰음식을 만들기 위한 과정과 식사를 대하는 예절·의미 등 그 안에 함의된 발우공양의 가치가 요즈음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단순히 배를 불리고 허기를 달래는 것, 건강하고 맛있는 것을 찾아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생명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과정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산스님이 1980년 처음 문을 연 산촌은 건강한 사찰음식 문화를 일반에 알리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사찰음식을 맛보기 위해 산촌을 방문했다가 한국 불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거나 채식문화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스님은 “‘사찰음식으로 포교활동을 하겠다고 했더니 버려야 할 오욕(五欲) 중 하나인 식욕을 취한다’며 거절을 당해 독립해서 본격적으로 사찰음식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며 “수행자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행식으로 상업 활동을 한다며 종단으로부터 승적을 박탈당하는 일까지 겪었다”는 일화를 전했다.
그는 최근 사찰음식의 대중화와 관련 쓴소리도 냈다. ‘채수(菜水)’ 사용 등 사찰음식이 변질됐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정산스님은 “요즘 사찰음식 전문가들은 본연의 자세를 잃고 있다”며 “사찰에서 채수를 사용한 음식은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어 “식용색소로 물을 들이거나 화려한 모양을 내는 장식 행위도 사찰음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대중과 접점인 음식점이라도 기본이 유지돼야 더 빛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근에는 사찰음식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후학양성에도 매진하고 있다. 그는 “전통을 이어갈 사람이 승려이건 불자이건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중요하지 않다”며 “원형에 가까운 사찰음식 본연의 맛을 지켜줄 사람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찰음식도 언젠가 궁중음식처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한다”며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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