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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다’라는 동사에 대하여

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재테크 수단 ‘오를수록’ 더 환영받아

욕망이 투영된 대상과 자신 하나돼

모두 높이 올라간 후 남는 건 상실감뿐

입력2026-02-06 18:27

수정2026-02-10 11:07

지면 23면
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직전 조사인 2주 전보다 4%포인트 올랐다.” “부동산은 줄곧 주식을 제치고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재테크 수단으로 꼽혔으나 2025년 7월 처음으로 주식이 1위에 올랐다.” “블랙핑크 로제가 히트곡 ‘아파트’로 미국 대중음악 시상식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최근 뉴스들은 대부분 ‘올랐다’라는 단어로 마무리된다. 물론 지지율이 오르거나 재테크 수단으로 손꼽히는 것과 수상자로 ‘물망에 오르다’는 의미가 다르기는 하지만 모두 긍정적인 의미의 진행형 동사다. 그 ‘오른다는 것’은 주체인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지만 때때로 주체를 소외시키기도 한다. 특히 수치적 가치로서 ‘오르다’는 적어도 자본주의에 속한 시간에서는 소유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소유한 사람에게는, 더 큰 여유를 소유하려는 사람에게는 상실을 안겨준다. 그리하여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오른다는 것은 커다란 두려움이자 그보다 더한 열망이 된다. 오른다는 것은 차이를 만들고 그 차이를 점점 벌리며 뒤를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오르고 있거나 이미 오른 것에게 다시 내려간다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치욕이다. 그래서인지 신문 지면에서는 ‘올랐다’의 반대말로 ‘내렸다’보다 자극적인 ‘떨어졌다’를 애용한다.

‘오르게 하는’ 존재가 개입해 ‘오르는 것들’은 클수록 너무 커져서 손에 잡을 수 없는 것일수록 더 환영받는다. 가령 집값이 올랐을 때 그 ‘집’은 매일매일 쓸고 닦고 만지며 낡은 벽지를 갈고 화해할 수밖에 없는 식구들의 소소한 다툼도 덮어주곤 했던 그 ‘집’이 아니다. 가족의 역사는 용적률과 전철역까지의 거리 앞에서 무력하다. 아침저녁으로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며 재건축 소식으로 행여 집값이 오를까 쑥덕거리며 이왕이면 더 높고 더 넓은 집이 되기를 바란다. ‘오르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의 욕망이 투영된 대상일 뿐이지만 어느새 둘은 동일시된다.

올라간 곳, 위에서 내려다본다는 것, 탐나는 그 정복자의 시선은 인간으로 하여금 발 딛고 있는 땅을 부정하게 한다. 높이 올라 어디서든 보이게 하고 싶은 자기 과시의 욕망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가까스로 홍수를 피했던 노아의 후손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이 올라간 탑을 쌓아 이름을 떨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인간의 불신과 불경을 경고하는 바벨탑의 신화는 역설적으로 한번 다시 올라가 보라고 속삭인다. 신에 가까이 가고자 한다는 변명으로 고딕의 첨탑은 하늘을 찔렀고 철과 콘크리트 같은 구조재의 발전, 엘리베이터의 발명은 바로 초고층 건축으로 이어졌다.

오른다는 것은 지극히 직설적이다. 어떤 은유도 미사여구도 없다. 높게 솟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초고층 건축, 초고층 아파트, 그 ‘높이’는 무한한 ‘힘’을 약속하며 끊임없이 거기로 오르라고, 가지라고, 헛되이 우리를 부추긴다. 초고층 타워 아파트들이 한두 군데 있을 때는 희소성 때문에 무척 눈에 띄었지만 몇십 년 후 강남과 강북의 재개발을 통해 한강 벨트를 잇는다는 청사진들이 완성된다면 지금과 달라질 것이다. 그때도 다시 모두 그곳을 바라보며 ‘저곳에 입성하기를’ ‘저곳만큼 오르기를’ 기대하며 서성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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