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와 실용주의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입력2026-02-10 05:00
지면 30면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이재명 정부는 유난히 실용(實用)을 강조한다.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낡은 이념은 이제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냅시다.”라고 주장하며 “이재명 정부는 유연한 실용정부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 국정기획위원회에서 마련한 국정운영 5개년계획에서도 3대 국정 원칙 중의 하나로 “실용과 성과”를 내세운 바 있다.
이처럼 실용을 강조한 것은 그동안 정치권의 극단적인 대결과 이념에 치우친 소모적인 논쟁에 지친 국민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여러 논쟁적인 이슈들에 대해 과거 민주당이 야당이었을 때 견지하였던 입장을 생각하면서 과연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까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지 8개월이 지났다. 과연 그동안의 이재명 정부 행적은 ‘실용정부’라는 말에 걸맞을까.
물론 사안마다 다를 것이다. 다만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대체로 외교와 경제 분야 문제는 실용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반면, 사회 분야에서는 아직도 이념적 고려 사항이 앞서는 것 같다. 먼저 외교 분야를 살펴보자. 사실 정권 초기 미국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중국에 편향될 것이라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이 우려를 이재명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성공적인 회담을 통해 불식시켰고, 특히 미국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국제 정세가 바뀌어) 한국이 과거처럼 ‘안미경중(安美經中)’ 태도를 취할 수 없게 됐다”고까지 발언했다.
또 일본에 대해 야당 시절에는 과거사 문제를 비롯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많이 표출하였지만, 집권 이후에는 한·일 정상 셔틀외교를 복원하는 등 양국 간의 긴밀한 소통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야당 시절에는 후쿠시마 처리수에 대해 ‘독극물’이라고까지 표현하며 방류를 극렬히 반대했었는데, 최근에는 일본 수산물 수입 재개 가능성까지 언급했다는 소식이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적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은 원자력발전에 대한 태도라고 생각된다. 국가 에너지 정책의 주무 부서인 기후에너지환경부의 김성환 장관은 대표적 탈원전론자로 정권 초기에는 이미 확정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들어있던 신규 원전 2기 건설에 대해서 토론회와 여론 조사를 통해 재논의하겠다고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해 9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AI 때문에 필요하다는데 신규 원전 짓는데에만 최소 15년 걸린다. 발전소를 지을 곳도 없고. 반면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는 1~2년이면 되는데 무슨 원전을 짓느냐”고 언급하면서 원전에 대해 매우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그러나 지난달 정부는 “한국은 에너지 섬나라이면서 동서의 길이가 짧아 태양광만으로 전력 운영을 하기가 매우 어려운 조건”임을 인정하면서 신규 원전 추진을 공식화했다. 물론 탈핵시민단체와 환경단체들은 반발했지만, 정부는 국가 전체를 고려하여 이념보다 실용적인 면을 택한 것이다. 정치인이 과거 자신의 소신을 바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 소신에 관련된 이념 단체들이 있으면 정치적인 이해득실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된 국제 환경과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여 국익을 위해 실용적인 판단을 내린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눈에 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사법개혁에 대한 여권의 경직된 태도가 대표적이다. 과거 검찰의 정치적 수사나 과도한 권력 행사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양식 있는 국민들이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그 방안들의 장단점에 대해 심층적인 토론을 통해 좀 더 정교하고 국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합의점이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현상은 시한을 정해놓고 밀어붙이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를 주도하는 세력은 여당 일부 의원들로서 정부의 의견과는 다르다고 변명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사법개혁의 성패를 결국 이재명 정부의 성과나 실패로 받아들일 것이다. 여기에도 국민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실용적인 태도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