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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판단 원칙의 입법화 필요하다

한석훈 연세대 겸임교수(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영자, 상법개정 탓 소송위험 커져

리스크 줄이려면 경영판단 원칙 규정

배임죄 기준 삼고 기업경쟁력 높여야

입력2026-02-11 05:00

지면 31면
한석훈 연세대 겸임 교수
한석훈 연세대 겸임 교수

지난해 상법 개정에 따라 회사의 이사 등 경영진은 ‘회사 및 주주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아울러 직무 수행 시 회사의 이익뿐 아니라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회사는 영리를 목적으로 설립됐으니 경영자가 회사 이익을 위해 직무를 수행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상법 개정으로 경영자는 개별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도 부담하는지, 회사와 주주의 이익이 대립하는 경우에는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환경보호나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은 무시해도 되는지 등 직무 수행의 기준이 모호해졌다.

경영자는 상법 개정으로 신사업 추진과 회사분할·합병, 주식 교환·이전 등 주주 간 이해가 크게 대립하는 경영 판단을 함에 있어 주식가치의 저평가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여기는 개별 주주들로부터의 소송 위험이 크게 증가하게 됐다. 특히 우리나라는 영미법 국가와 달리 배임죄가 있고 독일·일본의 경우보다 배임죄를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경영자의 경영 판단 실패로 인한 민형사상 소송 리스크는 해외 선진국보다 훨씬 큰 셈이다.

경영판단의 소송 리스크 확대는 기업의 적극적 경영을 가로막고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상법 개정 당시부터 그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었다. 최근 정부는 배임죄를 폐지하고 대체 입법을 하는 방향으로 연구 중이고 여당은 형법상 배임죄에 경영 판단 원칙을 명문화하고 상법상 특별배임죄는 폐지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한다. 상법상 특별 배임죄, 특정경제범죄법상 배임죄, 기타 각종 특별법상 배임죄 등 체계 없이 특별 배임죄를 남발해 온 만큼 배임죄의 대폭 개편은 불가피하다.

배임죄는 회사 경영뿐아니라 부동산 이중매매, 면허·특허권 이중 양도, 위탁물의 저가 처분 등 다양한 생활 관계에서 비롯되는 범죄이다. 매년 5000건 이상 발생하고 피해액도 거액인 경우가 많다. 미국 등 영미법 체계에서는 일반적 배임죄가 없는 대신 사기죄를 폭넓게 적용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동안 사기죄는 엄격하게 인정하는 대신 배임죄의 법리를 발전시켜 왔다. 따라서 배임죄의 대체 입법을 마련하는 일은 재산 범죄 대응 법체계를 바꾸는 일로 단기간에 이뤄질 작업이 아니다. 배임죄를 폐지한다고 해도 상법 개정에 따른 경영자의 민사상 소송 리스크는 그대로 남아 적극적 경영을 위한 해결책이 될 수도 없다.

해법은 결국 글로벌 스탠더드로서 경영 판단 원칙을 상법에 입법화하는 것이다. 경영 판단 원칙은 경영자의 임무 위배 여부를 판단할 때 1차적 심사대상을 경영자가 충분히 정보를 수집하고 적법하게 독립적으로 판단했는지와 회사의 최대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이성적으로 믿고 성실하게 판단했는지에 한정한다. 우리나라 판례는 판단 내용의 합리성 여부도 그 심사 대상에 포함하지만 미국·호주 및 독일에서는 1차적 심사 대상에서 이를 제외해 기업 경영을 잘 모르는 법관의 사후 심사 편견이 개입할 여지를 차단하고 있다. 경영 판단 원칙이 경영자의 ‘안전항(safe harbor)’으로 불리며 우수한 경영자를 유치하고 적극적 경영을 지원하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 이유이다.

상법의 이사 등 경영자의 의무 조항에 이 같은 경영 판단 원칙을 규정해 경영자의 임무 위배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나 배임죄 성립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이 기업인의 소송 리스크를 해결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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