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RIE2030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석좌교수(난양공대 산업처장 겸 변환경제센터장)
입력2026-02-10 17:27
수정2026-02-25 13:45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석좌교수
지금 세계 경제는 성장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의 방식이 바뀌는 국면에 들어서 있다. 기술은 빠르게 진보하고 있지만, 생산성은 정체되고 있고, ESG는 중요해졌지만 비용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각국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말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구조적 해답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이 칼럼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기존의 선형경제나 순환경제만으로는 왜 다음 성장을 설명하기 어려운지, 그리고 한 국가가 그 한계를 어떻게 국가 전략 차원에서 돌파하려 하는지를 싱가포르의 국가 연구·혁신 전략인 RIE2030을 통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싱가포르는 자원이 부족한 도시국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는 매 5~10년 단위로 국가 차원의 연구·혁신 전략을 정리해 공개하고, 이를 산업·재정·외교 전략까지 연결해 왔다. RIE2030은 그 최신 버전이며, 동시에 단순한 연구계획을 넘어 ‘다음 성장 질서’를 설계하려는 국가적 시도다. RIE2030이 왜 나왔는지, 그리고 이것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며 어떤 질서 변화를 의도하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RIE2030은 ‘Research, Innovation and Enterprise’의 약자로, 2030년까지 싱가포르가 어떤 분야에 연구와 혁신 자원을 집중할 것인지를 정리한 국가 청사진이다.
하지만 RIE2030을 단순히 연구비 배분 계획으로 이해하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이 문서는 기술 로드맵이 아니라 경제 구조 전환을 위한 정책 아키텍처에 가깝다. 제조, 헬스, 도시, 디지털이라는 네 개의 도메인을 중심으로 기술 개발이 어떻게 산업과 사회로 연결되고, 그 성과가 어떻게 재정·금융·국제 협력으로 확장되는지를 설계하고 있다.
특히 RIE2030은 연구 성과를 ‘논문이나 특허’가 아니라, ‘국가 자산’으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전 전략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 싱가포르 정부는 이런 문서를 왜 공개적으로 발표하는가. 그것은 단순한 정책 홍보가 아니다. 이런 문서는 세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첫째, 정책 방향의 명문화다. 정부 내부에서만 공유되는 계획이 아니라, 산업계, 금융권, 국제 파트너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도록 만드는 신호다.
둘째, 자원 배분의 기준 제시다. 연구비, 인프라 투자, 규제 완화, 국제 협력의 우선순위를 정당화하는 기준으로 사용된다.
셋째, 국제적 신뢰 구축이다. 싱가포르는 RIE2030을 통해 ‘우리는 어떤 경제를 만들고 있으며, 그 과정은 투명하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던진다. 이는 투자, 기술 협력, 국제기구와의 관계 설정에서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즉, RIE2030은 단순한 정책 문서가 아니라, 싱가포르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국가 선언에 가깝다.
이 칼럼이 제안하는 핵심 개념은 ‘변환경제(Cross Economy)’다. 변환경제는 기존 자원이나 성과를 단순히 재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의 성격 자체를 전환하는 경제 구조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폐기물은 자원이 되고, 데이터는 자산이 되며, ESG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 기준이 된다. 중요한 것은 ‘순환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으로 바뀌느냐’다.
RIE2030은 변환경제를 국가 차원에서 실험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Digital Economy는 그 실행 인프라이고, Digital ESG는 전환된 가치를 측정하고 신뢰로 바꾸는 장치다. 이 조합은 기술 전략이 아니라 성장 질서에 대한 재정의다.
그렇다면 다음 성장 질서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이 칼럼에서는 앞으로의 성장은 무엇을 더 많이 생산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어떻게 전환하고 증식하느냐의 문제라는 점을 다룰 것이다.
싱가포르의 RIE2030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국가적 답변이다. 이 칼럼을 통해 그 답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해부하고, 비교하고, 한국의 독자 여러분에게 질문을 던지려고 한다.
우리는 어떤 성장 질서를 준비하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의 정책과 산업 구조는 그 질서에 맞게 설계되어 있는가? 앞으로 그 질문을 독자들과 함께 풀어가고자 한다.
·싱가포르 난양공대(NTU) 재료공학과 석좌교수
·NTU 산업처장(총장 직속), Centre for Cross Economy 센터장, Flagship Programme 디렉터
*과학기술과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국가 성장 전략과 변환경제 모델을 연구하고 있다. RIE2030, Digital Economy, Digital ESG를 결합한 전환형 경제 구조를 제시하며 싱가포르와 ASEAN을 중심으로 국제 정책 실증과 표준 설계에 참여하고 있다. 연구·산업·정책을 연결하는 변혁적 연구를 통해 차세대 글로벌 성장 질서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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