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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보고만 받았다면 귀책 없어”…경영책임 기준 제시

■중처법 1호 정도원 삼표회장 무죄

향후 유사판결에도 영향 줄듯

CSO에 전담 조직 권한 주목

책임 구조 재정비할 가능성도

입력2026-02-10 17:52

수정2026-02-10 23:48

지면 25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 1호 사고인 경기 양주시 채석장 사망 사고로 재판에 넘겨진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 책임자의 책임 범위를 둘러싼 사실상 첫 사법적 판단이다. 법원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아닌 실질적으로 안전·보건 조치를 이행·감독하는 자가 법이 규정한 경영 책임자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의정부지법 형사3단독 이영은 판사는 10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산업재해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 회장과 이종신 전 삼표산업 대표이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삼표산업 법인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는 무죄가 선고됐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가 인정돼 벌금 1억 원이 선고됐다. 이 외에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삼표산업 본사 및 양주 사업소 관계자 4명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경기 양주 채석장 붕괴 사고는 2022년 1월 29일 발생했다. 삼표산업 양주 사업소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3명이 토사에 매몰돼 사망했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이틀 만에 발생한 사고였다. 검찰은 해당 사고와 관련해 정 회장과 이종신 전 대표이사 등을 안전 의무 미준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다.

해당 재판의 쟁점은 정 회장이 법이 규정한 ‘경영 책임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검찰은 정 회장이 실질적이고 최종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경영 책임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각종 보고나 회의가 삼표산업 등의 경영 책임자로서 주요 현안을 보고받고 안전·보건 업무를 포함한 사업 전반을 총괄해 경영상 의사 결정을 내리는 절차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표그룹의 규모와 조직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정한 의무를 구체적·실질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사고 원인과 관련해서도 기온 변화 등 예측하기 어려운 자연적 요소가 작용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고의적 의무 위반이나 방치 행위라기보다는 작업 공간에서 발생한 자연적 붕괴 현상으로, 임직원의 과실 정도가 중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미 유사한 법원의 판단도 있었다.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은 지난해 12월 경기 이천시 창고 시설 신축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사고와 관련해 도급 업체 대표이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회사가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에게 안전·보건 업무 전반에 관한 전결권과 최종 의사 결정 권한을 부여한 점을 근거로, 대표이사가 아닌 CSO가 법이 규정한 경영 책임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안전·보건 업무가 독립된 조직으로 이관되고 해당 책임자에게 실질적인 의사 결정 권한이 부여된 경우 대표이사가 곧바로 형사책임을 부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 등이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 책임자의 범위를 가늠할 수 있는 판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태엽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 책임자는 안전·보건 조치를 최종적으로 책임지고 이를 실질적으로 이행·감독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며 “(CEO가) 단순히 보고를 받았다는 사정만으로 해당 지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단순 보고나 점검 수준을 넘어 안전조치에 관한 구체적 지시나 통제가 있었다면 경영 책임자 인정 여부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누가 실제로 안전을 통제했는가’가 경영 책임자 판단의 핵심 기준임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기업 경영진의 대응 방식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표이사나 회장 등 최고 경영진의 직접 책임을 줄이기 위해 안전·보건 전담 조직과 CSO의 권한을 강화하는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날 민주노총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 판결은 앞으로 이어질 모든 재판에서 총수들이 내밀 ‘최우선 면죄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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