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듣기

  • 글자 크기

    글자 크기 설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 기사 공유

  • 북마크

  • 다크모드

  • 프린트

네이버 채널구독

다음 채널구독

6m 훌쩍 ‘완전체’ 대동여지도, 국립중앙박물관에 걸렸다(종합)

소장 데이터를 전통 한지에 출력

22첩 전체 한 화면으로 제작

6.7m 전체 크기 96.5%로 조정

입력2026-02-12 16:18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12일 대동여지도 앞에서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서울을 표시한 맨 오른쪽 지도 2장은 원래는 맨 위에 있어야 한다. 연합뉴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12일 대동여지도 앞에서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서울을 표시한 맨 오른쪽 지도 2장은 원래는 맨 위에 있어야 한다. 연합뉴스

중앙박물관(관장 유홍준)은 12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1층 로비 ‘역사의 길’의 벽면에 고산자 김정호(1804~1866)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22첩 전체를 펼쳐 전시했다. 박물관은 소장품 가운데 1861년 김정호가 손수 제작하고 목판으로 찍어낸 이른바 ‘신유본’ 지도를 고화질로 촬영한 뒤, 전통 한지에 인쇄해 벽면에 이어붙였다.

다만, 벽면에 있는 환풍 시설 등을 고려해 실제 지도(세로 6.7m, 가로 약 3.8m)의 96.5% 정도로 크기를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대동여지도는 박물관 관람객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있다.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22개 층으로 나누어 각 층의 지도를 1권의 첩으로 만든 접이식(분첩절첩식) 지도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소장하고 있는 대동여지도의 고화질 데이터를 전통 한지에 출력해 관람객들이 그 웅장한 규모와 세밀한 표현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 사람들이 이해했던 국토의 크기와 구조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 고지도 제작 전통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조선 지도의 결정판으로 평가받는다. 정확하고 상세하게 표현된 산줄기와 물줄기를 통해 국토의 맥을 파악할 수 있고, 도로에는 10리마다 점을 찍어 실제 거리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편리함을 더했다.

또한 행정·국방 정보를 비롯해 경제·교통 등 당시 사회의 다양한 정보를 기호로 담아냈다. 특히 현대 지도의 범례에 해당하는 지도표를 따로 만들어 이용자들이 많은 지리 정보를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적이다.

우리나라에 뛰어난 지도 제작의 전통이 있었던 것은 1402년(태종 2년)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영조 때 정상기가 백리척이라는 축척을 활용해 제작한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 신경준이 만든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 등은 대동여지도가 제작될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의 제작에 앞서 ‘청구도(靑邱圖)’, ‘동여도(東輿圖)’와 같은 필사본 전국 지도와 ‘대동지지(大東地志)’와 같은 지리지를 편찬했다. 이러한 지도 제작 전통을 집대성해 1861년 ‘대동여지도’가 완성됐다. 특히 목판으로 인쇄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도를 손쉽게 휴대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대동여지도의 특징이다.

12일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한 아이들이 대동여지도를 폰에 담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한 아이들이 대동여지도를 폰에 담고 있다. 연합뉴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는 책의 형태로만 접하던 대동여지도를 거대한 지도의 모습 그대로 마주하며 김정호의 위대한 업적과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직접 체감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조선 시대 과학과 예술의 정수가 담긴 대동여지도를 통해 우리 고지도의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시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그는 “당시 우리가 살던 땅의 가치를 중심으로 제작한 지도로, 무인도는 표기하지 않았다”며 “독도가 없다고 깎아내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다음
이전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