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싹 빌며 “한 방만 더”…가짜 피부과가 키운 ‘좀비 마약’의 비극
식약처, 13일부터 에토미데이트 마약류 전환 관리
수입부터 투약까지 전 단계 관리·잠금 보관 의무화
입력2026-02-13 17:11
지면 20면
“한 번만 더 놔주세요. ”
언뜻 피부클리닉처럼 보이는 건물에서 침대에 누워 주사를 맞던 여성이 흰 가운을 입은 남성에게 무릎을 꿇고 싹싹 비는 모습이 담긴 영상, 혹시 보셨나요? 강남 일대에 병·의원처럼 보이는 시술소를 차리고 ‘스킨 부스터’나 ‘지방 분해 주사’라고 속여 에토미데이트를 불법 투약해 온 일당이 덜미를 잡혀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의사 면허도 없는 이들이 의사 행세를 하면서 무분별하게 약을 주입한 것도 충격적이지만, 마취에서 깨자마자 약을 찾는 이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은 가히 충격적이더군요. 이번에 붙잡힌 의약품 도매법인 대표 등이 2024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유통한 물량은 성인 6만 3200명이 동시에 투약 가능한 규모라고 합니다. 공급원가가 박스당 3만 8000원 수준인데 중간 유통책을 거치는 동안 50배 넘게 뻥튀기된 가격에 판매됐다고 해요.
에토미데이트는 흔히 ‘우유 주사’로 불리는 프로포폴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전신마취 유도제입니다. 프로포폴은 투여와 동시에 혈압이 떨어지고 심박 수가 느려지는 등 활력 징후에 영향을 끼칠 수 있거든요. 건강한 사람에겐 큰 문제가 안 되지만 심장 기능이 약하거나 혈압 등 활력 징후가 불안정한 고위험군 환자에겐 치명타가 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에토미데이트는 심혈관계 안전성이 높아 중환자실, 수술실 등 응급 처치가 필요한 의료 현장에서 없어선 안 될 전문의약품으로 통합니다. 다만 마약류 특유의 쾌감이나 환각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중독성과 내성, 신체적 의존성 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이유로 그동안은 향정신선의약품으로 분류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관리·감독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 악용되면서 관리의 사각지대였죠. 상습 마약 투약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국가대표 야구선수 출신 A씨가 지인을 통해 에토미데이트를 다량으로 구했던 것으로 알려지는 등 각종 오·남용 문제가 불거지자 의료용 마약류 지정 요구가 높아졌습니다.
마침내 식약처가 칼을 빼 들면서 오늘(13일)부터 에토미데이트가 함유된 모든 제품은 마약 수준으로 관리가 격상됩니다. 이제 잠금장치가 있는 장소에 보관해야 하는 것은 물론 수입, 판매, 구입, 투약, 심지어 폐기까지 전 과정을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 실시간으로 보고해야 합니다. 낱개 하나하나 정부가 다 들여다보겠다는 의미죠. 무엇보다 불법 투약시 처벌이 강력해집니다. 이전에는 불법 투약을 해도 처벌 근거가 약해 훈방 조치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투약하는 순간 마약사범이 되는 겁니다. 사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은 상황이 다소 특수한데요. 중국은 에토미데이트 성분이 포함된 전자담배를 장기간 피운 15~20살 환자들의 부신 기능이 크게 떨어지고 내분비계 장애가 발생한 사례가 보고되면서 이미 2023년에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로 지정했습니다. 홍콩과 대만도 일명 ‘좀비 담배’로 불리는 변칙적인 오남용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규제를 대폭 강화했죠. 반면 미국, 유럽 등 서구권에서는 이런 식의 오남용 사례가 드물어 여전히 일반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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