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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자 바이킹?…유럽경제 부흥 이끈 숨은 주역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던컨 웰던 지음, 윌북 펴냄)

바이킹, 조공받은 돈으로 상품 사

무역·생산량 확대로 경제 활성화

2차대전서 러의 우크라 침공까지

경제학 개념 앞세워 전쟁 재해석

입력2026-02-13 17:50

수정2026-02-13 23:41

지면 17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사진 제공=윌북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사진 제공=윌북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스페인은 유럽의 최강국으로 떠올랐다. 아즈텍과 잉카 제국을 정복한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들여온 은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당시 유럽에서는 화약 무기가 중요해지며 전쟁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다. 군주가 전쟁 자금을 조달하려면 의회의 동의가 필요했다. 하지만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신대륙에서 쏟아져 들어온 은 덕분에 의회의 견제 없이 자금을 마련하면서 독단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그 결과 스페인은 네 차례나 국가 파산에 이르렀다. 반면 유럽의 다른 국가들은 군비 조달을 위해 더 자주 의회를 소집했고 의회를 비롯한 제도의 발전은 장기적으로 국력 강화로 이어졌다.

신간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는 돈의 흐름을 따라가는 경제학의 접근 방식으로 전쟁의 이면을 파헤친다.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경제와 사회를 파탄 내는 전쟁은 일반적으로 가장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경제학자이자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인 저자는 전쟁을 ‘유인(인센티브)’과 ‘제도’라는 경제학의 개념으로 재해석한다. 전쟁을 일으키는 유인과 유인을 만들어내는 정치·사회·경제적 제도에 주목한 것이다. 그 시대의 제도가 전쟁을 유발하고, 전쟁은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내는 상호 순환 구조라는 분석이다.

1000년 전 바이킹은 약탈자로 기억되지만 저자는 유럽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킨 존재로 평가한다. 9~11세기 서유럽 통치자들은 바이킹의 약탈을 멈추기 위해 ‘데인겔드’라는 조공을 바쳤다. 위협에 굴복해 재산을 내어주는 것은 경제적 손실로 보이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바이킹은 조공으로 받은 돈으로 유럽의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했다. 또 군주가 조공을 바치기 위해 농민들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걷자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더 오래 일하며 잉여생산물이 늘게 됐다. 바이킹에게 바치는 조공이 무역과 생산량을 늘려 경제를 활성화했다는 것이다.

100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정보의 실패’라는 프레임으로 들여다본다. 러시아의 전력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한 서방 국가들은 전쟁이 나면 길어야 몇 주 안에 러시아의 승리로 끝날 것으로 예측했다. 전쟁 전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무기와 훈련 지원을 꺼린 이유다. 하지만 전쟁 발발 후 실제 러시아의 전력은 서방이 우려한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는 점이 드러났다. 잘못된 정보 또는 어떤 목적으로 부풀려진 정보가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이어졌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책은 군사와 전쟁에 관심 있는 독자는 물론 조직을 운영하는 리더들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조종사를 위한 정교한 보상 체계를 마련했지만 외려 역효과를 가져온 독일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후 연구에 따르면 동료 조종사가 적 전투기를 격추하는 성과를 내 더 높은 지위를 인정받은 직후 다른 조종사들이 무리하게 싸우다 전사하는 확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공군은 조종사들이 최선을 다해 싸우기를 바라며 보상 체계를 강화했지만 조종사들의 위험 감수 성향을 높였고 이는 결국 조직에 해가 됐다는 분석이다. 주인(독일 공군)과 조종사(대리인)를 움직이는 유인이 일치하지 않아 이른바 ‘주인·대리인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쟁의 그림자는 좀처럼 걷히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병합 의지를 거듭 드러내며 유럽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고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집단 자위권 행사’ 발언으로 동북아시아의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4년째 진행 중이다. 북한이 핵무장 강화를 지속적으로 천명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역시 전쟁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저자는 ‘마치는 글’에서 세계 경제가 상호 연결되고 국제적 규범이 마련됨에 따라 전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섣부른 예측을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전쟁은 어떤 기준에서 보더라도 경제적으로 불합리한 일이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 어떤 일이 경제적으로 불합리하다고 해서 그것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360쪽, 2만 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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