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 인기에 기생하나…한달여만 화장품 신규 업체 600곳 등장
전년 동기 대비 50% 넘게 증가해
신규 건수 4년만 두 배 이상 늘어나
사업 목적 추가 후 미영위도 대다수
업체 남발로 K뷰티 훼손 우려도 제기
입력2026-02-14 06:00
지면 6면K뷰티가 3년 연속 역대 최대 수출액을 새로 쓰는 등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자 올해 들어서만 600개가 넘는 화장품 판매 업체가 탄생하며 난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인기에 편승한 무분별한 진입이 늘면서 K뷰티 고유의 프리미엄 이미지와 신뢰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올 들어 신규 등록된 화장품 책임 판매 업체 건수는 63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23건) 대비 50% 급증했다. 증가율도 가파르다. 2021년 연간 2047건이었던 신규 등록 건수는 2022년 3098건, 2023년 4019건, 2024년 4107건에 이어 지난해 4472건으로 4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기존 핵심 역량과 무관한 진출이 대다수다. 지난해 12월 화장품업을 추가한 C사는 비디오물 제작사이며 S사는 조명 장치 제조 기업이다.
업계는 산업 전체의 질적 저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시장 분석과 이에 맞는 기획·품질·마케팅 등 그동안 K뷰티가 각광받게 된 성공 공식은 빠진 채 오직 마케팅과 트렌드에만 기대는 영세 브랜드가 난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성장성만 보고 안전성이나 품질관리에 대한 인식 없이 무작정 사업에 뛰어든다면 K뷰티의 이미지만 손상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K뷰티 성장세를 등에 업기 위한 화장품 사업 진출 붐은 영세 기업뿐 아니라 상장기업 등 주식 공개 기업 사이에서도 폭넓게 나타나고 있다. 충분한 준비 없이 화장품 사업에 무작정 뛰어들었다가 정작 사업을 시작하지도 않은 채 상장폐지되는 등 K뷰티 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경제신문이 2022~2025년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공시를 분석한 결과 △화장품 책임 판매업 △화장품 도소매업 △화장품 연구개발업 △화장품 및 미용 상품 매매업 △화장품 원료 제조·유통·수출입업 등 화장품과 관련된 내용을 사업 목적에 추가한 경우는 127건으로 집계됐다. 2022년 36건이었던 화장품 관련 사업 목적 추가는 2023년 25건으로 줄었으나 2024년 28건, 2025년 38건으로 최근 3년간 증가세를 보였다. 이 중 합병 등과 같이 구체적인 사유가 있는 곳은 6건에 그쳤고 나머지는 단순 ‘사업 영역 확장’이나 ‘사업 다각화’ ‘신규 사업 추진’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
이들 중 화장품 사업을 전개한 곳은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해당 기업들의 사업보고서(2024년 기준)에 기재된 사업 목적 현황을 살펴본 결과 이 기간 동안 추가한 화장품 관련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곳은 46곳에 불과했다. 화장품을 사업 목적에 추가했음에도 실제로 사업을 전개하지 않은 기업이 대부분인 셈이다. 특히 미영위 기업들 대다수는 철강선 제조 업체인 대호특수강과 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 업체인 아이스크림미디어, 전자부품 제조 업체인 포톤 등처럼 핵심 보유 역량이 화장품과 거리가 먼 업종이었다. 이들 상당수가 K뷰티를 단순 주가 부양용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다.
◇너도나도 뛰어들더니 폐업도 급증=화장품업 진출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역설적으로 화장품 관련 업체의 폐업 또한 급증하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2023년 3만 1524건이었던 전체 화장품 책임 판매 업체 수는 2024년 2만 7932건으로 줄었다. 2024년 새로 등록했던 업체 수(4107개)를 고려하면 결국 2023년 당시와 비교해 7699개의 화장품 업체가 줄어들었다. 1년 만에 등록 업체의 약 4분의 1이 사라진 셈이다. 충분한 준비 없이 화장품 산업에 무작정 뛰어드는 업체들이 우후죽순 늘어난 데 따른 부작용으로 해석된다. 화장품 책임 판매 업체는 아모레퍼시픽이나 에이피알 등과 같이 화장품을 판매하는 일종의 브랜드사로, 식약처가 요구하는 자격 기준을 갖춘 뒤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한다.
대기업 등이 화장품 산업에 뛰어들었다가 손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다수 발견된다. 대표적인 곳이 제약 바이오 기업인 셀트리온이다. 셀트리온은 2016년 당시 비비크림으로 잘 알려진 화장품 브랜드 한스킨을 인수했다. 셀트리온은 한스킨의 사명도 셀트리온스킨큐어로 변경하고 화장품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했으나, 셀트리온스킨큐어는 2023년 57억 8000만여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2024년에도 두 배가량 증가한 110억 2000만여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대표 문구 기업인 모나미 역시 2023년 화장품 기업 모나미코스메틱을 설립하고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으나 2023년과 2024년 각각 31억 원, 44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적자 행진을 보이고 있다.
◇한 방 노리다 큰코…철수 재현 우려도=일각에서는 2010년대 중반 유커 및 다이공(소규모 무역상)으로 인해 화장품 산업이 급격하게 성장함에 따라 많은 기업이 화장품 산업에 쉽게 뛰어들었다가 실패했던 모습이 재현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11년 골판지 전문 기업 산성피앤씨가 인수한 화장품 기업 리더스코스메틱의 마스크팩이 중국에서 대박을 치면서 회사가 급성장하자 많은 기업이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으나 곧 쓴맛을 보고 철수했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이마트다. 2016년 이마트는 화장품 브랜드 ‘센텐스’를 내놓았으나 시장에서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약 5년 만에 철수했다. 이마트는 2019년에도 ‘스톤브릭’을 선보였으나 역시 2년 만에 접었다. 롯데백화점 또한 2016년 ‘엘앤코스’를 선보였으나 2년 만에 사업을 중단했다. 이 밖에도 패션 기업 코오롱FnC는 2020년 ‘라이크와이즈’를, 마뗑킴은 2023년 ‘마지두마뗑’을 출시했지만 현재는 모두 사업을 전개하지 않고 있다.
뷰티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10년대 중반 중국에서 한국 화장품이 큰 인기를 끌면서 주식시장에서 차화정(차이나, 화장품, 정보 채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화장품 기업의 주가가 크게 뛰었고 이 때문에 너도나도 화장품 사업에 뛰어드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며 “이후 완전히 사라졌던 K뷰티의 인기가 이제서야 간신히 살아났는데 뷰티 업체들의 남발로 다시 훼손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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