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냄의 매력’ 창고형 매장, 온라인 대세론도 거스른다
대형마트 10만 품목 매입·관리할 때
트레이더스·코스트코, 4000품목 불과
비누, 단 2~3품종 취급…큐레이션 기능 강화
적은 품목 대량 구매로 판매가 낮춰
찰리 멍거도 칭찬한 시스템…약국도 적용
입력2026-02-15 13:00
창고형 마트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대용량 포장이라 1인가구 트렌드에도 맞지 않고, 직접 시간을 들여 방문해야 한다는 점에서 온라인 커머스의 편리함과도 거리가 있지만, 최근 유통업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몇 가지 제품 만을 골라 가격을 낮춰 파는 창고형 매장 특유의 운영 시스템이 우리나라 소비자에게 먹혀드는 모습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이마트의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는 지난해 총매출이 전년 대비 8.5% 증가한 3조852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에는 1조 4억 원의 총 매출을 올려 사상 처음으로 분기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293억 원으로 39.9% 급증했다.
미국계 창고형 대형마트인 코스트코 역시 우리나라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다. 코스트코코리아의 지난 회계연도(2024년 9월∼2025년 8월) 매출은 7조 3220억 원으로 12.1% 늘어났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545억 원으로 16.5% 증가했다. 창고형 매장의 이같은 성장은 온라인 유통업체의 매출 비중이 코로나를 거치며 전체의 59%까지 늘어난 가운데 이뤄진 것이라 주목된다. 사실상 온라인 트렌드를 거스르는 성장인 셈이다.
취급 품목수를 일반 마트의 30분의 1 수준으로 줄인 전략이 고품질·가성비를 구현한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코스트코와 트레이더스는 매장 내 재고 품목수를 4000SKU(stock-keeping units)로 유지한다. SKU는 유통업계의 재고 관리 단위로 특정 품목 하나가 1SKU다. 창고형 할인마트의 경우 연중 어느 시점이든 취급 품목을 4000개 안팎으로 유지하는 셈이다. 일반 대형마트의 경우 통상 8만 SKU로 여름이나 겨울 시즌 상품이 들어올 때는 12만 SKU로 늘기도 한다. 미국 월마트의 경우 통상 12만 SKU를 유지한다.
이같은 적은 취급 품목은 창고형 할인매장이 구매 단가를 낮추는 기반이 된다. 한 가지 종류를 대량으로 매입할 수 있어 다품종 소량 구매를 해야하는 일반 마트보다 같은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는 원리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일반 대형마트에 비누가 10개라면, 코스트코나 트레이더스에는 단 두 세개의 비누를 판매한다”며 “이 두 개의 비누는 온라인과 비교해도 경쟁력있는 가격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제품의 순환도 빠르다. 특정 품목 당 두어 개의 상품을 취급하기 때문에 소비자 호응이 없은 제품은 빠르게 새로운 제품으로 대체된다. 다른 유통 매장에 비해 품질과 가격, 트렌드 등 MD의 큐레이션 기능이 강화된 형태다.
워런 버핏과 영혼의 단짝인 투자 철학가 고(故)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이 이같은 창고형 매장의 시스템을 높이 평가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멍거 부회장은 버핏의 소개로 1997년부터 코스트코 이사를 역임했으며 2023년 사망할 때까지 코스트코의 주식을 팔지 않았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2020년 말 코스트코 주식 430만 주를 매각한 뒤에도 멍거 본인은 코스트코 주식을 계속 보유했다. 멍거 부회장은 생전 코코스트코를 두고 “가장 효율적인 회사”라거나 “나는 (코스트코에) 완전히 중독됐다”고 여러 차례 호평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신세계와 코스트코의 전신인 프라이스 클럽이 손을 잡고 1994년 창고형 매장을 처음으로 설립했다. 당시 유통의 변화를 살피던 신세계는 이후 2010년 토종 창고형 할인점인 트레이더스 1호점을 열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회장은 9일 트레이더스 인천 구월점을 찾은 자리에서 “16년 전 트레이더스 1호점을 열었을 때 고객들에게 생소한 창고형 할인점 모델에 대한 우려와 이걸 굳이 해야 하냐는 의문도 있었지만 뚝심 있게 혁신을 계속한 결과가 지금의 트레이더스”라며 당시를 떠올리기도 했다.
최근 창고형 할인 매장의 시스템은 국내에서 약국 등 다른 업종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주택수리용품업체 ‘홈디포’나 중형 식료품점 ‘알디’ 등 다양한 창고형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기 불황, 고물가가 지속될수록 소비자들이 대용량 묶음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마트를 선호한다”며 “온라인 쇼핑의 편리함과 다른 쇼핑 경험도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에 올해도 창고형 할인마트에 대한 수요는 계속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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