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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일본, 보이지 않는 한국

임병식 순천향대학교 초빙교수

입력2026-02-19 16:52

임병식

임병식

순천향대학교 초빙교수

일본에서 장애인 노인이 전철에 타는 모습을 형상화한 AI 이미지.
일본에서 장애인 노인이 전철에 타는 모습을 형상화한 AI 이미지.

일본 갈 때마다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다. 휠체어를 타고 전철에 오르는 노인, 보행 보조기를 짚고 상점가를 걷는 고령자, 지하철 플랫폼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자폐 청년. 일본 거리에서 틱 장애 청소년과 몸놀림이 어색한 노인을 마주치는 건 흔하다. ‘일본에 유독 자폐 장애나 신체장애가 많나’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혹시 물이나 음식, 사회적 환경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스쳤다.

그러나 통계는 선입견과 추정을 쉽게 허문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유병률은 국가 간 큰 차이가 없다. 일본의 경우 대체로 1~2%대로, 한국 역시 비슷한 범위로 추정한다. 미국은 다소 높지만 유의미한 건 아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최근 아동 36명 중 1명(약 2.8%)이 ASD 진단을 받는다고 발표했다. 과학계의 주류 견해는 환경오염이나 특정 음식 때문이라기보다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신경 발달 특성이라는 데 무게를 둔다.

신체장애 통계 역시 다르지 않다.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 등록 장애인은 약 960만 명, 인구 대비 7%다. 이 가운데 신체장애인은 3%대다. 한국 등록 장애인은 265만 명, 인구 대비 5% 안팎이다. 절대 수치는 일본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초고령 사회를 고려하면 구조적 결과다.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9%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초고령 사회, 일본에서 보행 장애나 만성질환 환자는 유별난 게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방인 눈에는 더 ‘자주’ 마주치는 것으로 느껴질까. 해답은 ‘수치’가 아니라 ‘가시성’에 있다. 장애인 정책과 사회 인식이 주된 요인이다. 일본은 2006년 고령화 대응 정책 일환으로 ‘배리어 프리’ 법제를 강화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점자 블록 확대, 경사로 의무화, 저상버스 도입을 확대했다. 중점 역에서는 ‘단차 해소(스텝 프리)’가 90%대까지 진행됐다는 지표가 있다. 이동권 확보는 장애인을 집 밖으로 이끌었다. 정책이 장애인들을 드러내는 조건이 된 셈이다.

교육 정책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특수학교 중심 체제에서 통합교육으로 확대해 왔다. 지역 복지센터와 발달지원 프로그램도 촘촘하다. 사회 인식도 변했다. 장애를 숨기기보다 드러내고, 배제하기보다 참여하는 쪽으로 이동했다. 완전한 평등과는 거리가 있지만, 최소한 거리에서 장애인을 마주치는 게 낯설지 않은 환경은 만들어졌다.

한국은 고령화 속도는 일본 못지않지만, 이동권 보장을 비롯해 여러 면에서 뒤처진다. 사회적 편견도 여전하다. 수년 전 서울 강서구에서는 장애인학교를 반대하는 시위가 사회문제가 됐다. 서울대공원 둘레길은 자폐 자녀를 둔 부모들이 선호하는 산책 코스다. 타인을 의식해 인적 드문 곳을 걷는 것이다. 한국에서 장애인이 적게 보이는 건, 밖으로 나오기 어려운 구조와 편견일지 모른다. 일본에서는 장애인이 많이 보이는데 한국은 보이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이동권 보장은 노동시장 참여와도 직결된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장애인 고용률은 2023년 기준 2.3%다. 실제 고용 인원은 64만 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인구 감소 속에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적 선택이다. 복지 비용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의 사회보장비는 연간 130조 엔을 넘는다. 그중 고령자 관련 지출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고령·장애인 외출과 사회 참여 확대는 장기적으로 돌봄 비용과 고립 비용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장애인이 보이는 사회’는 지출이 아니라 투자다.

우리는 어떠한가. 장애인 고용 의무제는 존재하지만, 노동시장 참여율은 OECD 평균보다 낮다. 장애인이 밖으로 나오기 어려운 환경은 경제활동 제약으로 이어진다.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생산과 소비 영역에 충분히 편입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장애를 가족의 부담으로 방치하는 현실도 바뀌어야 한다. 가까운 공기업 이사장은 올해부터 시각장애가 있는 60대 중반 형과 생활한다. 지난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돌볼 사람이 없어서다. 정부 책임이라는 사회적 고민과 공감대가 필요하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한·일 공통 과제다. 차이는 대응 방식에 있다. 일본은 장애인 이동권을 고용으로 연결했다. 결국 일본 거리에서 유난히 장애인이 눈에 뜨인 건 정책과 사회 인식의 결과인 셈이다. 이로써 일본이 특별히 장애 인구가 많은 나라라는 건 근거 없는 선입견은 깨졌다. 일본은 장애를 지닌 이들과 공존할 수 있도록 꾸준히 정책과 제도를 설계해 왔다. 거꾸로 한국은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드러나지 않아서일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키우지 말아야 할 개가 두 마리 있다. ‘편견’과 ‘선입견’이다. 이렇게 일본에 대한 또 하나의 선입견과 편견을 지우는 것으로 새해를 시작한다.

임병식의 일본, 일본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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