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혜의 K판타지아] 저마다 제 뜻을 펼치다
선승혜 주영국한국문화원장
각기 포부를 이뤄가는 여정은 감동적
K컬처, ‘뜻 펼치는 휴머니즘’ 방향 제시
인간 고유·보편성으로 세계와 만나야
입력2026-02-20 18:02
수정2026-02-20 23:45
지면 23면
한류는 더 이상 한국 안에 머물지 않는다. K컬처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살아 움직인다. 나는 K컬처가 21세기의 시대사상이 될 수 있을지 자주 상상한다. 거창해 보일지 모르지만 환상처럼 보이기에 오히려 가능성을 품는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한국 문화를 소개하며 내가 끝내 붙든 한 문장이 있다. “저마다 제 뜻을 펼친다.”
그리스 철학이 아테네에만, 기독교가 예루살렘에만, 공자의 사상이 취푸(曲阜)에만 머물지 않았듯 사상은 경계를 넘는다. 한국 문화 역시 보편의 문 앞에 서 있다. 나는 디지털 확산을 보며 “우리가 맨 앞에 있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속도가 빠를수록 더디게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 그 중심에 ‘저마다 제 뜻을 펼친다’는 말이 있다.
‘저마다’는 단순한 ‘각자’가 아니다. ‘저’는 거리를 두되 존중하는 지시어이고 ‘마다’는 빠짐없음을 뜻한다. 분리가 아닌 구별, 고립이 아닌 고유함이다. 관계 속에서 서로를 인정하는 존재 방식이며 다양성과 존엄, 민주성과 평등이 스며 있는 말이다. 21세기는 개인이 저마다의 가치를 지니는 시대다.
‘뜻’은 의지이자 포부이며 길이자 본성이다. 세종은 훈민정음에서 ‘신기정(伸其情)’을 ‘제 뜻을 펴다’로 풀이했다. 뜻은 감정이면서 동시에 지향성이다. 서양어에서 ‘윌(will)’ ‘웨이(way)’ ‘미닝(meaning)’ 등으로 나뉘어 번역되는 의미를 우리말 ‘뜻’은 하나로 응축한다. 그래서 인공지능(AI)이 목표를 최적화할 때 인간은 뜻을 품고 살아간다.
‘제 뜻’은 순간의 감정이 아니다. 제철과 제자리가 그러하듯 시행착오와 고군분투를 거치며 다듬어진 진심이다. 저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쉬워 보이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끝내 자신이 감당하고 찾아내야 할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펼친다’는 달성이 아니라 과정이다. 접힌 것을 펴듯, 꽃잎이 열리듯, 시간을 들여 스스로 이뤄가는 여정이다. 제 뜻이 날개처럼 펼쳐지는 모습은 아름답고 뭉클하다. K팝이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 곳곳의 다양한 개성들이 하나의 문화 안에서 저마다의 뜻을 펼치며, 나아가 서로를 변함없이 응원한다. 이보다 더 감동적인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었던가.
AI 이후 인간은 무엇인가. 여기에 답이 있다. AI가 평균을 산출한다면 인간은 삶을 펼친다. 기술은 효율과 예측·평균화를 지향하지만 인간은 고유성과 관계성·지속성을 지닌다. 이 차이를 철학적으로 구조화할 때 K컬처는 ‘뜻을 펼치는 휴머니즘’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기술을 거부하는 태도가 아니라 기술과 공진화하며 인간의 고유성을 재정의하는 제안이다. “저마다 제 뜻을 펼친다.” 이것은 구호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와 만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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