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애 논란이 드러낸 북한 세습 체제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金, 후계 내정 단계 돌입했지만
제도적 공식화까진 갈 길 멀어
北 체제 불확실성 더욱 커질 것
입력2026-02-23 05:00
지면 29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딸 김주애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국가정보원이 이달 12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주애가 현재 후계 내정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히면서다. 국정원은 그 근거로 김주애가 일부 시책에 의견을 제시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의전 서열상 위상이 사실상 2위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김주애가 이미 후계자로 확정됐는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현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인 것은 분명하다. 북한 매체는 올해 1월 1일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당시 김주애의 모습을 정중앙에 배치해 보도했다. 북한은 선전선동부를 통해 대내외 매체를 철저히 통제하며 사진 한 장에도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안치된 궁전에 참배하는 장면에서 김주애를 중앙에 세운 것은 백두혈통의 정통 계승자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17일 ‘최중대 사업’으로 추진해온 평양 5만 가구 주택 건설 완공 행사에 나타난 김주애의 행보 역시 주목할 만하다. 김주애가 아버지와는 다른 동선으로 움직이며 주민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포옹하는 모습이 북한 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북한 체제에서 주민과의 직접 접촉과 의견 청취는 최고지도자만이 수행할 수 있는 ‘현지지도’의 고유 영역이다. 중국 마오쩌둥의 ‘간부는 책상 위에서 통치하지 말고 농촌으로 내려가라’는 ‘현지조사(调查研究)’를 북한식으로 변형한 현지지도는 ‘수령이 직접 와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개인 숭배적 카리스마 정치를 연출하는 통치 기법이다. 김주애의 이러한 행보는 사실상 수령의 역할을 모방한 것이다.
후계자에게 필수적인 상징적 호칭 또한 이미 등장했다. 2024년 3월 16일 김정은과 함께 온실농장 준공식에 참석한 김주애를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향도의 위대한 분들”이라고 호칭했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은 향도자를 “혁명 투쟁에서 인민 대중이 나아갈 앞길을 밝혀주고 승리의 한길로 이끌어주는 영도자”로 정의한다. 이는 최고지도자인 수령에게만 사용되던 표현으로 김주애에게 동일한 호칭이 부여됐다는 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내정 단계를 넘어 제도적으로 후계자가 공식화되는 절차다. 전례를 감안할 때 최소 5년의 시간이 필요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일은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2010년 제3차 당대표자대회에서 각각 당내 공식 직책을 부여받으며 후계자 지위를 제도적으로 확인받았다. 북한은 사실상 1인 지배 체제이지만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당·국가 체제를 강조하고 있다. 노동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영도한다는 논리다. 이에 따라 김주애 역시 당내 공식 직책을 부여받아야 후계자로 확정될 수 있다. 그러나 노동당은 만 18세 이후에야 입당할 수 있으므로 2013년생으로 추정되는 김주애의 연령을 고려하면 최소 5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공식 후계 구도가 가시화되는 과정에서 김정은 체제가 감당해야 할 도전 역시 적지 않다. 북한은 파벌 형성을 극도로 경계하며 ‘종파주의 척결’을 통치 원리로 내세운다. 1956년 8월 종파 사건으로 소련파와 연안파의 도전을 경험한 김일성은 이후 철저한 감시와 숙청을 통해 1인 지배 체제를 공고히 했다. 후계자를 조기에 부각시키는 것은 그만큼 최고지도자에 대한 잠재적 도전 공간을 넓히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김주애가 김정은에게 직접 반기를 들 가능성은 없겠지만 후계자 김주애를 옹위하는 세력의 등장은 배제하기 어렵다.
여기에 김정은의 건강 문제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북한 연구자들 사이에는 ‘김정은의 건강이 이상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말이 공유된다. 김정은이 유고하지 않더라도 건강상의 이유로 통치 행위가 제약될 경우 2인자의 부상은 불가피하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될수록 북한 체제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김주애 문제를 바라보며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 근대 민족국가가 제도적으로 출범한 1648년 이후 공화국을 표방한 체제에서 4대 세습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의 한쪽에서 전근대적 세습이 재연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무겁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시킨다. 통합된 민족국가로의 완성이 아직도 멀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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